청소는 벌이 아니에요

당연히 해야 할 일

교실청소가 벌?

어릴 적 가장 이해가 가지 않는 벌이 ‘교실청소’ 였습니다. 시험을 잘 보지 못했거나 숙제를 안해온 친구들은 수업 후에 남아 교실을 청소하고, 나머지 친구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죠. 운동장에서는 먼저 나간 친구들이 뛰어 놀고 있고…

한마디로, ‘청소’는 벌이 아니라 누구든 당연히 해야 할 공동체 활동입니다.

사용한 물건을 제 자리에 정리하고, 나로 인해 더럽혀진 곳은 내가 깨끗이 닦아 놓는 교육만큼 책임감과 공동체의식을 길러주는 활동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내가 소홀히 하면 다른 친구들이 피해를 보게 된다는 것 또한 매우 멋진 경험이지 않을까요?

물론, 교실을 지저분하게 어지럽힌 아이에게 벌은 당연히 청소가 되겠죠. 성취도가 낮거나 숙제를 못했다는 이유로 청소는 결코 벌이 될 수 없습니다.

청소를 못하는 아이들

새 학기가 시작되면, 우리 모두가 함께 사용할 공간의 의미로 아이들과 청소를 함께 합니다. 다 같이 모여서 바닥도 쓸고, 손걸레로 책상과 가구를 닦기도 하고, 운동장에 나가 우리 반 청소 구역을 정리하곤 하는데, 해가 갈 수록 놀라운 것은 바닥 빗자루질과 걸레질을 할 줄 아는 친구들이 점점 늘어난다는 점입니다.

  • 빗자루질은 휴지조각 말고도 바닥의 보이지 않는 흙먼지까지 모두 쓸어내야 함.
  • 교실 앞에서 뒤로, 중앙에서 바깥으로 빈 곳 없이(쓰레기나 먼지가 보이지 않더라도) 쓸어내고 벽에서 모아 쓰레받이로 담기.
  • 빗자루는 바르게 잡고 빗자루 솔이 바닥에 평평하게 맞닿아 넓게 쓸어야 함. (의외로 반대로 잡고 쓸어내는 친구들이…)
  • 대걸레는 고인 물에 걸레를 자루로 꾹꾹 눌러 두 번 빨아 헹구고, 발로 밟아 물을 짜내야 함.
  • 대걸레는 바닥을 쓸고 난 뒤에 흔적과 남은 먼지를 지우는 것이지 물을 바르는게 아니므로 힘주어 밀어 닦아내야 함.
  • 손걸레는 세 번 접어서 한 면씩 8면으로 고르게 닦아야 손에도 잘 맞고 깨끗하게 닦을 수 있음.

뭐, 이런 방법들이 있잖아요?

이런 방법들을 아주 어린 시절에 배우지 않으면, 언제 배울 수 있을까요? 그리고, 초등학교 시절 청소라는 벌을 피한다고 해서 평생 청소하지 않는건 아니죠. 자기방, 집, 사무실, 공동시설 등 어디든 내가 봉사하고 힘을 쓸 수 있어야 하지 않을지.

벌과 벌이 아닌 것?

실수와 노력했지만 완수하지 못한 것은 벌을 받을 이유가 없겠죠. 기회를 한 번 더 주면 되는 일입니다. 실수가 연속되어 발생하는 잘못과 일부러 해오지 않는 경우가 벌을 부르는 태도입니다.

  • 청소 – 교실을 더럽히거나 어지럽혔을 때에만…
  • 글씨쓰기 – 글씨를 대충써서 자신도 읽지 못할 정도로 성의가 부족할 때…
  • 일기쓰기 – 당연히 써야 하는 것이니 벌이 될 수 없죠.
  • 사탕사오기 – 아이가 무슨 잘못을 했기에 사탕을 사와야 하는거죠? 벌이 될 수 없습니다.
  • 자아비판문(반성문?) – 반성이라는 것은 돌이켜서 생각해 보는 것을 말하죠. 돌이켜 생각해서 표현(말)해보고 사과의 의미로 다른 아이에게 편지를 쓴다거나 하는 순화된 활동으로의 유도 없이, 그저 죄송합니다/잘못했습니다를 반복해서 쓰도록 하는 반성문은 아무런 교육적 의미가 없습니다.
  • 기합- 손들고 서 있기, 무릎꿇고 앉아있기는 신체적 고통보다 모욕감이 더 크고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차라리 한 대 맞는게 나을 정도죠. 벌이 아닙니다.
  • 체력단련 – 무언가를 완수하지 못하는 것은 인내심과 집중력 저하 등의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신체적인 발달 불균형에서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평소에 운동하기 싫어하면서 나태한 친구라면, 50m 전력질주로 기록을 깨도록 하는 (진짜) 체력단련이나 우리 반이 정한 3종 경기 코스를 제한 시간 내에 완주하도록 해서 성취감과 신체 발달을 꾀할 수는 있겠습니다. (윗몸일으키기 20회 + 팔굽혀펴기 10회 + 50m 전력질주 = 기록)

아이들이 벌을 받아야 할 이유가 얼마나 있을까요? ^^; 당연히 해야 할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면, 벌이라는게 존재할 필요가 없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그럼, 당연히 해야 할 것들이 뭐가 있을까요?

 

예쁘게 글씨 쓰기 수련

천재는 악필이다!

스스로 천재라고 생각한다면 얼마든지 악필을 가지고 살아도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글씨를 예쁘게 쓰려는 노력은 매우 중요한 과정이고, 나를 남에게 보여줄 수 있는 하나의 잣대입니다.

글씨쓰기는 ‘미적감각의 조화’, ‘소근육 협응력’, ‘완급과 인내’의 결정체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큰 도화지에 아름답게 그림을 그리기는 어렵겠지만, 1cm도 안되는 선과 점과 곡선을 하나하나 반듯하게 그리기를 어려워 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인내와 절제, 성취

어린 시절, 예쁘게 글씨쓰기를 배우는 시점은 문장도 아니고 문단도 아닌, 하나의 낱말 정도입니다. 욕심이 지나쳐 손이 아플 정도로 많은 글씨를 쓰는 것은 올바르다고 할 수 없겠지만, 아이가 충분히 해낼 수 있을 만큼이라면 얼마든지 노력할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 한 글자와 낱말을 완성하기 위해 집중하고 노력하는 것 자체로 인내를 배울 수 있겠고,
  • 획의 나아감과 멈춤, 둥글게 만나도록 애쓰는 과정에서 절제를 배울 수 있겠고,
  • 낱말이 완성되어 조화됨을 느끼며 성취감을 경험하게 될 겁니다.

손 끝에서 느끼는 아름다움

바르고 곧은 획과 자형을 갖추어나가는 것 자체에서 균형과 조화를 이해하고 내 손 끝에서 이루어지는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힘주면 진하고 굵고, 힘을 빼면 흐리고 가늘어짐을 글씨에 조화시켜 아름다운 글씨를 생각해 내도록 도와주세요.

  • 샤프는 글씨의 강약을 조절할 수 없으니, 반드시 연필을 사용해야 합니다.
  • 연필은 나무의 질이 무르고 심이 너무 딱딱해 손가락이 아프지 않는 것이 좋겠고,
  • 가느다랗고 디자인이 예쁜 연필은 손을 아프게 합니다. 6각연필이 가장 무난하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글씨, 잘 썼네”는 칭찬도 아니고 격려도 아닙니다. “이응이 아주 동그랗구나”, “세로 획이 반듯하구나”, “가로 획이 좀 더 길어야 안정감이 있겠다”처럼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주시고, 글씨 배우는 아이들이 중얼거리면서 반복하면 점점 예쁜 글씨로 바뀌어 갑니다.

소근육 발달과 협응력

그림을 그리거나 만들기를 할 때, 유독 금새 싫증을 느끼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심리적으로 그리기와 만들기 활동이 싫어서 그런 경우도 물론 있겠지만, 손이 제 맘대로 되지 않아 고통스러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작은 색종이에 풀을 칠하지 못하고 손에 이리저리 묻히다가 작품을 망치는 경우, 붓으로 색을 칠하는데 밑그림에 맞게 칠하지 못해 우둘두둘하게 그려지는 경우에 끝까지 노력하는 아이들보다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재미없어요’, ‘다른 것 해요’, ‘난 미술이 싫어’라는 반응이 훨씬 많습니다.

  • 눈으로 보고 손끝으로 옮기는 습관은 바른 글씨쓰기를 통해 충분히 가능합니다.
  • 손가락에 힘이 없어도 글씨를 억지로 꼭꼭 눌러쓰지 않도록 하여, 흐릿하더라도 바르게 잡고 써야 합니다.
  • 손가락을 너무 연필심 가까이 잡으면 글씨가 보이지 않아 눈을 바짝 대게 됩니다. 넉넉히 잡고 흐릿하게 쓰면 됩니다.
  • 글씨를 쓰다가 지치면 용수철 그리기나 격자 그리기, 가로긋기, 세로긋기 등으로 시원하게 마음을 정리하고 다시 쓰면 됩니다.
  •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쉽게 지치고 힘들어 합니다. 쉬다가 쓰다가 쉬다가 쓰면서 서서히 완성되어 가는 것을 보는 것도 좋습니다.

워드프로세서와 손글씨, Font

글씨를 쓰지 않으려고 워드프로세서를 이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보다 디지털화가 쉽고, 빠르게 작성할 수 있고, 수정이 용이하기 때문입니다. 나이들어 경험하셨겠지만, 분명한 사실은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펜 끝에서 나옵니다. 회의실이나 사무실이나 연수원에서 노트에 펜으로 써내려가며 그려낸 그림이 워드프로세서나 프레젠테이션 도구로 제작하는 밑그림이 됩니다.

경험해 보셨겠지만, 어릴 적 부터 지금까지 필체가 여러 번 바뀌었을 겁니다. 저도 어릴 적부터 필체가 4~5번 정도 바뀌었는데요, 어느 날 더 멋진 필체를 보고 따라 쓰다가 조금 바뀌고, 손감각에 맞게 또 살짝 변형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바뀌는 과정에서 남들이 읽기 편한 필체와 간격, 크기를 깨우치게 되고 워드프로세서의 서체(font)의 활용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 글씨를 예쁘게 쓰다보면, 미적 감각을 살려 도해 그리기 쉬워집니다. 도해는 나와 다른 사람간의 소통을 원활하게 해주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며 기능입니다.
  • 워드프로세서도 아름답게 작성해야합니다. 가장 아름다운 서체, 자형, 문서배치는 손글씨로 이것 저것 써본 사람만이 제대로 찾아낼 수 있습니다.

대대대대한한한한(x) 대한민국대한민국(o)

글씨쓰기를 연습하는 교본 중에 펜글씨 교본은 썩 좋지 않아보입니다. 서점에 가시면 학년별로 국어교과서의 낱말과 문장을 제시해 글씨체를 예쁘게 바꿔주는 서적이 있습니다. 종이도 가볍고 살살 써도 잘 써집니다. 교실에서 아이들과 매우 유용하게 사용하였는데,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 대대대대 한한한한 민민민민…으로 연습하면 안됩니다. 빨리 쓰려고 요런 수를 많이 쓰는데, 글자는 균형이고 어려운 낱말을 반복해서 연습하는 공부입니다.
  • 게다가 세로로 대대대대 한한한한…쓰기는 우리가 세로쓰기가 기본이 아닌이상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가로쓰기로 옆 글자와 전체적인 균형을 갖추도록 써야 합니다.
  • 띄어쓰기를 분명하게 해야 합니다. 너무 과하게 띄어 쓸 필요는 없지만, 띄어쓰기도 반드시 알아야 할 맞춤법이기 때문입니다.

무공 수련과 글씨 수련

공부 = 쿵푸

공부를 중국말로 쿵푸라고 읽습니다. 쿵푸의 고수는 공부의 고수가 되는 셈이죠. 겸손한 마음가짐으로 훌륭한 스승에게 제대로 배워 외공과 내공과 경공을 조화롭게 수련해야 공력이 쌓여 고수가 될 수 있습니다.

글쓰기 고수가 되려면, 세 공력을 쌓아야 하는 법…

  • 두뇌와 팔과 손가락 근육의 단련을 통한 외공
  • 참고 이겨내 아름다움의 깨달음을 얻는 내공
  • 아름답고 다양한 글씨 쓰기를 생활에 실제 활용하는 경공

내가 못쓰니, 아이도…

글씨쓰기. “우리 아이는 원래 못써요”가 아니라 “내 자신이 못쓰니 아이도 대충쓰라”며 방치한 것일 수 있습니다.

아이가 성장해 성공과 실패를 좌우 하는 것은 손끝(디테일)에서 결정됩니다. 아이의 손끝을 사랑해 주시고, 6학년 아이들도 글쓰기 교본과 일기장에 바른 글쓰기를 하다 보면 확실히 달라지고, 행동과 마음과 말투도 달라집니다.

우리 학급의 이야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