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선생님과 자상한 부모의 ‘아이들과 묻고 답하기’

교직에 있으면서 아이들이 나에 대한 평가는 대부분 긍정적이었는데(믿거나 말거나), 그 중 대표적인 키워드 하나를 들자면 ‘친절한’ 선생님이었다. 허투루 군것질 거리를 베푸는(?) 법도 없었고, 꽤나 고지식한 편이라 아이들에게는 다소 엄격한 편이었는데도 말이다. 복도에서 마주친 저학년 꼬맹이들도 ‘친절한’ 선생님이라 하니, 이쯤 되면 나름의 요령은 있지 않았겠나 싶은 생각이 들어 하나 둘 되는대로 꺼내 정리해 보려 한다.

 

< 친절한 선생님과 자상한 부모의 ‘아이들과 묻고 답하기’ >

 

아이들과의 커뮤니케이션 코드 중에 가장 명확한 것이 바로 대화인데, 화법에 대해서 연구를 했다거나 학위가 있다거나 깊이 공부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십 수 년의 교직경력을 통해 아이들과의 친절한 교실 대화법을 심플하게 정리하자면…

  1. 내 머릿 속에서 내가 한 대답은 나에게만 들린다.
  2. 갈팡질팡 길을 잃지 않도록 하자.
  3. 예상치 못한 대답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터득해라.
  4. 생활지도에서 뻔한 질문은 그냥 정의하는게 낫다.

교실 대화법이지만, 아이 키우는 입장에서 내 아이와 대화를 연결지어보면 결국 일맥상통한다.

묻고 답하기가 대화의 한 범주이지만, 작은 대화의 시작도 묻고 답하기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으니 무게를 문답에 두어보려 한다.

 

내 머릿 속 대답은 나에게만 들린다

우선, 명확하게 질문하자

수업을 진행할 때, 머릿 속에서 이미 대답해버리고 아이들에게 이렇게 질문한다.

(사진을 한 장 보여주며)

“얘들아, 이게 뭐지?”

대짜고짜로 ‘이게 뭐냐고?’ 이건 일단 성의있는 질문도 아니고, 창의력을 키워주는 질문도 아니다. 사실, 교사도 사람인지라… 듣고 자란 습관대로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이야기해주지 않는 한, 본인이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실내 놀이터나 식당에서 부모와 자녀들의 대화를 들어보면,

  1. (메인 질문이 짧고) “그거, 이리 가져와”
  2. (보충 질문이 여럿이고) “아니, 손에 들고 있는 거! 아니, 반대쪽 손! 그래, 그거!)
  3. (아이탓으로 마무리)  “너는 왜 한번에 못 알아 듣니? 좀 제대로 해라.”

이런 질문 뒤에 엉뚱한 대답이 나오면, ‘우리 아이들이 엉뚱해서…’라고 평가한다.

다시말해, 질문은 분명히 불필요한 요소를 통제해야 한다.

  • 제시된 자료가 사진이라는 것,
  • 메시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
  • 우리가 다 같이 보아야 한다는 것,
  • 답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미리 통제하면,

정답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이 사진 속의 인물들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싶어 하는 것일까?”

 

행동을 기대할 때는 구체적으로

또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면,

(동기를 부여할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고)

“자, 이제 우리가 무엇을 공부하게 될까?”

개인적으로, 어떤 대답이 나올지가 더 궁금하다. 질문하는 사람의 머릿 속 대답은 우리에게 들리지 않는다. 적어도 아이들에게 힌트로 남겨주어야 하지 않을까?

더 중요한 것은, 질문 속에서 상황을 다시 한 번 정리해 주어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거나 놓친 아이들을 모두 데려갈 수 있다.

상황이 다양하기 때문에 정답은 아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질문하고, 질문을 답에 포함시키도록 하기를 제안한다.

“지금까지 들은 인물들의 대화를 통해서, 지금부터 우리가 어떤 것들을 찾아보게 될까?”

 

올바르게 질문하려면 나부터 정확히 알아야 한다

3 ○ 2 = 5

“자… 더해야 할까, 빼야 할까…?”

기호와 약속은 어릴 때부터 익숙해져야 한다. 특히나, 선행학습이나 가정에서 보충하여 가르치는 경우는 더욱 주의해야 한다.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도식이나 그림이 아니라,  저렇게 기호화 하여 제시했다면 거의 마지막 단계로 봐야 한다. 이 단계부터는 더하고 빼는 문제가 아니라 수학 기호의 사용과 약속의 단계로 넘어왔다. 그에 따라 질문도 정확히 제시해야 한다.

다시 다루겠지만, 수학은 생각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이 우선이고, 모든 사고가 끝난 뒤에는 약속된 기호에 따라 정리해 두는 것이다. 질문은 이렇게 해야 옳다.

“저 동그라미 안에 어떤 (수학) 기호를 사용하면, 5와 같게 될까?”

수학기호에 대한 정의는 매우 중요하다. 일부러라도 반복해서 +, -, ×, ÷ 에 대해 ‘기호’, ‘약속’ 임을 설명해 주어야 한다.

 

갈팡질팡 길을 잃지 않도록 하자

여러 작은 질문이 연결되는 경우에, 양떼를 몰듯 자연스럽고 분명하지만,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며 나가야 한다. 잠시 옆길로 빠져야 할 일이 생기거나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큰 그림을 잊지 말고 가던 길을 꿋꿋하게 밀고 나가 마무리 지어야 한다.

나 혼자 흥에 겨워 이리 저리 헤매고 다니다보면, 먼저 아이들이 대혼란에 빠지게 되고 자신은 곧 멘탈 붕괴에 이른다.

대개 이런 기준에 따라 연속 질문을 구상해 두면, 길을 잃지 않는데 도움이 된다.

  • 먼 곳에서 가까운 곳으로
  • 과거에서 현재까지
  • 쉬운 것에서 어려운 것으로
  • 큰 개념에서 작은 개념으로 등등

역시 주의할 점은 머릿 속에 내린 대답에 갇혀서, 아이들에게 불분명하게 질문하지 않도록 노력하자.

이런 꿋꿋한 의지를 꺾는 엉뚱한 질문이 끼어들어 혼란의 그림자가 다가오더라도 꿋꿋이 이겨내야 한다. 다음에서 처럼…

 

예상치 못한 대답을 받아들이는 방법

간혹 이야기 중에, 문답 중에 갑작스럽게 날아오는 엉뚱한 대답은

  • 질문이 잘못되었거나,
  • 정말 예상하지 못한 멋진 생각이거나,
  • 말장난으로 반 전체를 길 잃게 만드는, 나쁜 대화 습관일 경우다.

 

잘못된 질문에서 시작되는 경우

질문이 잘못되었다면, 지체 없이 정정해서 다시 질문해야 한다. 잘못된 질문을 억양만 바꿔가며 되묻지 말자. (정작 본인은 모르는 경우가 많다) 딱, 봐서 분위기가 이상하다 싶으면, 질문이 잘못된 것이라고 보면 거의 틀림이 없다.

(아이들은 잘못이 없다)

“얘들아, 이게 뭐지?” (1)

“……”

(침묵 뒤에) “사람들이요…?”

“아니, 이게 뭘까?” (2)

“……”

“아프리카 사람들이요…?”

“어? 뭐라고? 이게 뭔지 모르겠니?” (3)

(이렇게 나가선 끝을 알 수 없다. 1에서 바로 이렇게 넘어왔어야 한다)

“아, 얘들아 미안, 다시 생각해보자… 여기에 모여있는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 모습일까?”

 

아이들이 예상치 못한 멋진 생각을 격려

전혀 예상치 못한 멋진 생각이라면 한 수 배우는 마음으로, 진심어리게 (아이라고 하더라도) 존경을 표하며, 다른 관점으로 새롭게 도전한 점을 높게 평가하여 정리함으로써 칭찬하면 된다.

여기서는 평가 후 정리 방법이 중요한데, 칠판 한 구석이나 교사 노트에 멋진 생각을 반드시, 무슨 일이 있어도, 아이가 보는 앞에서 즉시! 적어두도록 한다. 나는 주로 칠판 한 쪽 모서리를 이용하는데, 잠시 보류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정말, 멋진 생각인데? 좋아, 다시 본론으로…”

이게 아니라…

“이 상황을 그런 관점에서도 볼 수 있겠구나! 그렇게 보니 생각해야 할 부분이 많아지는데, (칠판에 적으며) 지금은 다같이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을 함께 살펴보기로 하고, oo의 생각은 조금 있다가 선생님과 좀 더 자세히 들어보도록 하자~? (동의 구하기) 어때? 괜찮겠지?”

멋진 생각을 한 친구의 태도에 대해 교사가 아낌없이 ‘존중’해주어야 한다. 그래야 다른 친구들도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고, 교과서에도 나오지 않으며, 생각을 통해 이끌어낸 관점에 박수를 보낼 줄 알고 모두가 ‘즐길 줄 알게’ 된다. 이게 탐구이고 배움이 아닐까?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법. 쉬는 시간이 되거나 자유 활동 단계가 되면, 아이 옆에 다가가 아까 그 생각에 대해 조용히 물어야 한다.

  1. (앞서말한) 무릎앉기와 눈높이 맞추기는 필수
  2. 충분히 들으면서 (뻔히 알고 있지만, 생각을 더할 부분이 있다면) 궁금한 부분을 아이에게 묻고,
  3.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과정과 ‘출처’를 파악해서
  4. 직접 경험한 것이라면 경험하게 해 준 사람의 노고까지 존경을 표하는 디테일한 과정이 필요하다.

여기서 나는 한 가지 덧붙이는데,

  1. (학원에서 배운게 아니라면) 쉬는 시간이 끝나고 다음 수업이 시작될 때,
  2. 칠판 한 구석에 적어 둔 내용을 아이들에게 상기시키며,
  3. 지금까지의 대화를 아이들 앞에서 이야기하도록 한다.

아이의 발표 후에는

  • 스쿨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을 알차게 활용하여 노력한 점,
  • 도서관의 백과사전을 사용한 점,
  • 부모님과의 시간을 뜻깊게 받아들인 점 등

모두가 본받아야 할 점들을 곁들여준다. 각별히 주의하는 부분인데, 아이들 중에 부모님과 시간을 함께 보내기 어려운 경우가 있으므로, 어디를 다녀온 것이 아니라 부모님과의 시간을 소중히 생각하고 뜻깊게 받아들였다는 점에 방점을 찍어 강조한다.

(그럴리는 없겠지만) 부모나 교사의 자존심 대결로 받아들이고, 어떻게든 아이의 생각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거나, 오답으로 결론 내리려고 전전긍긍하는건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생각이다.

교실은 먹이사슬 속에 경쟁하는 야생이 아니라,

다 함께 배우며 탐구하는 평화로운 공간이다.

그런 의미에서 부모와 교사의 두뇌투명하고 말랑말랑 해야만 한다. 우리 어릴 적, 우리 자신들이 부모, 교사와 경험했던 가치있는 활동들을 모두 꺼내 긍정적인 부분은 더 부각시키고, 부정적인 부분을 반성하여 모두 재구성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잘못 길들여진 나쁜 언어습관을 극복

가장 큰 문제는 어릴적부터 길들여진 아이들의 나쁜 대화 습관이다. 엉뚱한 이야기를 꺼내면 친구들이 ‘반사적’으로 반응하는 것을 ‘웃겨서’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강연자의 주의집중식 개그코드는 대화의 주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웃음을 유발해 뇌를 환기시키는 과정에서 더 중요한 무언가를 던지기 좋은 상태를 만드는데 웃음코드가 사용되는 것이다.

주제와 관련없는 ‘면박주기’, ‘헛점들추기’, ‘혼란유도하기’의 언어습관은 그 자리에서 즉시 고쳐주어야 한다.

  1. (동요하지 말고) 감정을 싹 빼는 것이 우선이다.
  2. 던져진 나쁜 말 자체를 진행중인 수업과 연결시킨다.
  3. 다같이 판단하도록 해보고,
  4. 결과를 전달하면, 끝.

교사가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면, 일단 상황은 마무리 짓기 어렵다. 화를 내라는 것이 아니라, 길을 잃지 말라는 뜻이다.

(엉뚱한 말에 웃음바다가 잦아들기를 기다려서)

“아무개가 (한 말 그대로 전달하며) 라고 지금 이야기 했는데, 지금 대화의 주제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아무개가 설명해 주겠니?”

(이럴 때, 꼭 같은 무리가 또다시 말을 던져 웃음바다를 만들게 마련이다)

“아무개도 (한 말 그대로 전달하며) 라고 지금 이야기 했는데, 지금 대화의 주제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말해 줄 수 있겠지?”

하지만, 현실에서는 늘 분위기 흐리던 녀석들이라 사소한 경우라도 감정조절에 실패하게 되고, 절대로 이런식으로 말할 수 없다. 게다가 웃음바다가 끝나기를 기다리다 보면, 감정이 복잡해져 컨트롤이 불가능해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올바르지 못한 피드백인 ‘웃음’은 중간에 확! 끊는게 여러모로 좋다.

(웃음바다가 잦아들기를 기다리기 전에)

“응? (못들은 척) 뭐라고? oo야, 다시 한 번 말해줄래? 나만 못들은 것 같아서 그러니, 다시 말해보렴.”

(침묵 + 눈 마주치기 + 기다림) “……”

(두 번 말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혹시, 들은 사람 있니?”

(다시 말했을 경우에는) “좀 더 크게~ 다시? 잘 안들리는데? (하면서 가까이 다가간다)”

이쯤 되면, 다시 말하려 하지 않을 뿐더러 다시 듣기를 원치 않는 분위기로 흘러간다.

“지금 말 한 것이 우리가 지금 나누고 있는 이야기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말해주겠니?”

(일단 시선들이 모이면, 이런 아이는 100% 우물쭈물 하게 된다)

(감정을 싹 빼고) “다른 친구들에게 웃음을 주고 싶다면, 수업시간이 아니라 정말 웃겨야 할 상황이 되었을 때를 정확히 노려서, 최선을 다해주면 좋겠다.”

또는 그런 류의 “현재 상황과 어울리지 않음”을 매우 짧게 짚고 넘어가면 된다. (그래서 나같은 경우에는 ‘할 때 하고, 놀 때 놀자’라는 매우 심플한 학급운영의 대전제를 만남과 동시에 제시한다)

이런 단계는 몇 번이면, 더 이상 반복되지는 않는다. 학년 말까지 가져가는 친구는 단 한 명도 없다. 돌발 행동으로 웃어 넘기려는 것이었는데 진지한 대화로 이어지는 것이 반복되면, 일단 본인 스스로 즐겁지 않기 때문이다. (수업시간에는 개그도 다큐로 받아들이는 이상한 분위기)

아이들의 나쁜 습관이 자라는 것은

아이 스스로 기르는게 아니라,

무관심과 귀찮음 속에 방치되기 때문이다.

모르기 때문에, 나쁜 습관이 반복되는 것이다. 본인 스스로 깨닫게 되면, 아이들은 도덕적인 약속을 어른들보다 100배는 잘 지킨다.

여기서 주의 할 점이 하나 있는데, (제발) “선생님의 기분이 어떻겠니, 선생님 기분이 나쁘잖니, 엄마 입장은 생각해 봤니?…” 하지 말자.

분명한 것은 잘못 형성된 습관은 타협의 여지가 없이 바로잡아야 하며,

객관적으로 상황을 분명히 인지시킨 후에 자발적인 변화를 기대해야만 한다.

너와 나의 관계를 중심으로하는 주관적인 감정으로 바로잡기를 호소하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엄마와 선생님 앞에서만 말 잘 듣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면, 개인적인 관계와 기분, 감정을 이용하면 된다.

 

뻔한 질문을 하느니, 정의 내리는 편이 낫다

뻔한 질문은 두 가지 경우에만 써야 한다.

  1. (저학년이나) 놓친 아이가 있을 때, 반복 상기시켜주려고 쓰고…
  2. 학습내용 중에 중요한 내용을 강조하려고 쓴다.

아이들과 이런 저런 대화가 끝나고, (까먹기 전에) 곧바로 던지는 뻔한 질문은

“요것은 무슨 색?” > “빨강색”

“건너면?” > “안돼요!”

“선생님의 펼친 손가락 몇 개?” > “두 개”

이게 아이들 수준에 맞는 적절한 뻔한 질문이다. 이외의 상황에서는 가급적 뻔한 질문을 사용하지 않는게 좋다. 집에서든 학교에서든 반복되는 뻔한 질문에 아이들이 길들여지지 않도록 하자.

 

뻔한 질문에 길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는 뻔한 질문과 대답은 이런 게 있다. 많이 들어봤으리라.

“맛이 어때?” > “좋아요.”

“향기가 어때?” > “좋아요.”

“기분이 어때?” > “좋아요.”

뻔한 질문에는 (어른들도) 똑같이 대답한다. 심지어 TV리포터 조차도 아이들에게 이렇게 질문을 던지고, 대답하는 아이들도 저렇게 대답한다. 바로 뻔한 질문에 길들여진 아이들이다.

앞서 장황하게 이야기한대로 질문이 풍부하고 정확해야 한다. 그래야 질문에 자신의 생각과 감각을 더해 더 풍부하게 대답(표현)할 수 있게 된다. 질문하는 역할인 부모와 교사의 역량이 그래서 중요한 것이다. 부족하면 훈련하면 된다. 훈련하기 귀찮아 포기하는 것 조차도 아이들에게 그대로 전달 된다.

“맛이 어때?” > “딸기향이 많이 나서 많이 달콤할 줄 알았는데, 너무 달지 않아서 제 입맛에 잘 맛아요.”

“향기가 어때?” > “꽃 향기처럼 달지 않고, 풀 냄새처럼 상큼해요.”

“기분이 어때?” > “덥고 힘들긴 한데요, 신나게 뛰어놀 수 있어서 너무 즐거워요.”

아이든 어른이든 이렇게 무성의한 질문에 성의있게 대답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것이라 예상해 본다. 별 것 아닌(?) 대답이지만, 딱 봐도 뻔한 질문의 문제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뻔한 질문의 결정체, 잔소리

그런데, 이 뻔한 질문이 생활습관을 고치려는 대화로 이어진 것을 우리는 잔소리라 부른다.

“복도에서 뛰면 될까? 안될까?” (유도 질문)

“엄마가 뛰라고 그랬어?, 뛰지 말라고 그랬어?” (엄마의 말임을 강조)

“반찬 남기면 돼? 안돼?” (윽박 지르기)

강요하고 반복하는 질문이기도 한데, 뛰지 말라는 것이 참 모호한 정의다. 뛰면 안된다고 일단 답하여 상황을 모면하고 나면, 빠르게 걷는건 뛰는게 아니므로 정도만 약하지 결국 또 뛰게 된다. 뻔한 질문 덕분에 의도를 교묘히 피해갈 구멍이 생겨 버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강조할 부분이 무엇인지 확실히 해야 한다. 저 대화에서는

‘알아두자’는게 아니라, ‘실천하라’는게 핵심이다.

이렇게 질문하는게 옳다. (이미 다 알고 있으면서도 장난삼아 뛰는 것이므로)

“(정의내리기) 부딪혀서 다른 친구가 다칠 수 있으니까, 복도에서는 오른쪽으로 천친히 걷자.  (실천약속) 할 수 있겠지?

 

 

대화의 시작은 대부분 묻고 답하기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말하기 자체가 참 어렵다.

심플하게 정리하면, 대화는 ‘배려’이다. 답하는 아이의 입장을 헤아려 묻기 전에 나 스스로 답해보면 좀 더 친절해 질 수 있다.

부모가 어린 시절부터 이런 대화를 경험해 보았다면, 이런 과정이 체득되어 조금 더 나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부모로서의 역량을 길러야 한다는데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이번 기회에 평소 나의 대화법에 신경쓰고, 제대로 친절해 질 수 있도록 애써봅시다.

 

“Manners Maketh Man” – William of Wykeh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