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게 글씨 쓰는 습관

글씨는 나만 알아보면 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도 알아볼 수 있어야 하고, 그 속에는 나의 정성이 들어가야 합니다. 손가락 끝부터 손목, 팔에 이르는 세세한 근육을 사용하면서 그려내는 그림으로서의 글씨의 의미도 있겠지만, 획과 획의 간격, 세로와 가로를 잇는 동안 ‘기다림’, ‘세기’, ‘흐름’과 같은 의미를 수련하게 됩니다.

자음에서 모음으로 넘어갈 때, 짧은 순간을 참아내지 못하면 획이 달라붙어 버립니다. 자음에서 가로획으로 시작하는 모음으로 넘어갈 때도 힘을 주어 충분히 뻗어내지 못하면 균형을 잃고 비틀비틀 세로 글자가 되어 버리게 됩니다. 무술을 수련하는 사람이 내공 수련의 하나로 서예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컴퓨터와 워드프로세서가 발달한 세상일수록 글씨는 더욱 중요한 나의 표현 방법입니다. 어린 시절 터득하지 못하면, 어른이 되어 열 배의 노력이 필요한 것이 바로 글씨이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더욱 가슴 아픈(?) 일은 아이들은 ‘교사’의 글씨체를 그대로 모방하려 한다는 점입니다. 학년을 마칠 즈음 아이들 일기장의 글씨체를 우연히 보다가 저만의 특이한 획을 그대로 흉내 내어 그 아이의 글씨체가 되어버린 것을 보고 너무나 놀랐습니다.

쉬는 시간과 아침 시간에 글씨를 쓰게 합니다. 처음엔 제가 만든 학습지로 글을 쓰게 했고, 지금은 별도의 글씨체 연습본이나 펜글씨 교본을 구입해 활용하고 있습니다.

 

세종대왕기념사업회 > 한국글꼴개발연구원 > 자료실

http://www.sejongkorea.org/

 

주의하실 점은 글씨체 학습지를 만드실 때는 절대로 신명조 같은 활자체를 사용하지 마시고, 세종대왕기념사업회에서 개발하여 공개한 손글씨 정자체인 ‘문체부 쓰기 정체’를 이용하시면 됩니다. 활자용 서체는 손글씨와 맞지 않아 따라서 쓰기도 힘들고 예쁘지 않습니다.

당연히 해야지요.

“선생님, 교과서 꺼내요?”

“이거 꼭, 해야 해요?”

“안하면, 안돼요?”

“안 가져오면 안돼요?”

교사뿐만 아니라 친구들까지 기운을 한 번에 빼버리는 물음 1순위가 아닌가 싶습니다. 질문이라기보다 칭얼거림 쯤 되겠습니다. 습관적인 친구들도 있지요. 당연히 해야 할 것들은 당연히 해야 한다는 인식도 필요합니다. 꾸준히 해 왔던 것들이나 모두가 해야 하는 것들은 특히나 그렇습니다. 매번 답하다보면, “응, 그래”, “응, 그렇고 말고”, “네, 당연하지요”…가 습관이 되어버립니다.

학기 초에 당연히 해야 할 것들에 대한 규칙을 마련해 두시면 좋습니다. 자치활동을 통해 선생님이 사회자가 되어 토의해서 붙이는 메모지에 당연히 해야 할 것들을 찾아 중복된 것을 빼고, 게시판이 붙여 정리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다만, “제가 오늘은 ~사정 때문에 시간이 되지 않아요. 하루만 더 시간을 주세요.” 또는 “모레까지 해오면 안될까요?”라는 요청은 단순히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이므로 망설이지 마시고 한 번에 ‘좋아’라고 적극 수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아이 스스로 시간을 정해 활동하겠다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고, 과제의 경우에는 적어도 사흘 정도는 여유를 주셔야 아이들이 시간 계획을 세우는 힘이 길러집니다. 대개 이런 요청을 하는 아이들은 반드시 해옵니다. 수학-수학익힘책 과제 같은 경우에는 그날 그날 과제를 해오는 것이 좋겠지만, 다른 활동과 겹치면 힘들어합니다. 여유를 주시거나 가능하면 수업시간에 풀도록 하시는게 가장 좋겠습니다. (고학년은 공부할 내용이 너무 많아서)

아이들에게 장기적인 협동 프로젝트는 매우 짜릿하고 즐거움을 줍니다. 목표설정과 계획하여 실천한 뒤에 이루는 성취감은 정말 대단한 경험입니다. 이런 활동에 기본적으로 해야 할 것들에 대한 자신감 없는 망설임이나 할지/말지를 걱정하는 좋지 못한 습관이 사라져야만 가능해집니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모든 교육 활동과 모두가 함께하는 과제는 할지/말지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시켜주실 필요가 있습니다. 덧붙이자면, 당연히 해야 할 것에 대해서는 과도한 칭찬이 필요 없습니다. ‘모두 다 해왔구나!’라는 칭찬은 ‘우리는 할 수 있어’라는 가능성보다 ‘(우리는 원래 안해오는 반인데) 어쩌다 한 번 다 해왔네?’라는 내포된 뜻이 전달될 우려가 있습니다. 평소와 다르게 열심히 한 아이에게 ‘강화’의 차원에서 ‘열심히 노력했구나, 힘들었지?’와 같은 격려를 위한 칭찬이 좋겠습니다.

우리, 급식은 남기지 말고 골고루 먹도록 해요.

‘교육적’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비교육적이다, 교육적이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모든 활동들은 최소한 ‘교육적’이어야 한다는데 동의하실 겁니다. 학급 경영과 수업에 있어서 교육적이라는 것의 목표는 어느 정도까지는 정해져 있지만, 이를 실제로 적용하고 가치화하는 역할은 교사의 주관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예로 학교에서 급식이라는 활동은 아이들의 형이상학적 생각에서 벗어나 원초적 본능(?)을 자극시켜 이루어낼 수 있는 훌륭한 교육 활동입니다. 저의 경우 학급 경영에서 급식은 매우 중요한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밥상 머리 교육’이라는 말이 부각될 정도로 학교 급식에서 가르칠 수 있는 내용이 많았는데요. 나름대로 급식이라는 환상적인 작은 활동 속에서 여러 교육적인 요소들을 찾아보았습니다.

 

  1. 음식이 우리에게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지 생각하기
  2. 여러 종류의 반찬을 골고루 먹는 과정에서 맛을 더 좋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기
  3. 우리들이 좋아하는 인스턴트 음식을 찾아보고 건강한 식습관을 생각해보기
  4. 싫어하는 김치와 나물들이 성장에 필요한 우리 몸에 영양소를 제공한다는 사실 찾기

 

여기에 더하여

 

  1. 내가 친구들과 생활하면서, 또는 공부하면서 좋아하는 것만 찾고, 싫어하는 것은 무조건 버리려는 습관이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기
  2.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의 조화가 만들어내는 맛을 찾아내고 내 친구들과 어울림에 대해 생각해보기

 

어느 날 학급 경영에서 너무나 많은 교사의 에너지를 소비하게 만드는 친구들을 집중적으로 관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반찬을 꽤 심각하게 가려먹고, 특정한 메뉴의 냄새만 맡아도 토할 것 같다며 거부감을 보이며 인스턴트 메뉴는 더 받으려고 친구들의 것을 노리거나 꼼수(?)를 부리는 아이들의 성향을 유심히 살펴보았습니다. 물론, 모두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교우 관계나 학습 활동에서 좋아하는 친구와 선호하는(자신이 잘 할 수 있는) 활동에만 집중력을 발휘하였고, 궁금하지 않거나 조금 힘든 내용은 쉽게 포기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영양 불균형으로 발생하는 체력부족과 성장 발육의 문제는 둘째치고, 이런 부족한 에너지를 보충하기 위해 군것질을 (몰래) 하거나 군것질 거리를 친구들에게 나누어주면서 책임을 회피하려는 성향도 습관적으로 보여졌습니다. 식습관 하나가 발전하여 학교생활의 여러 부분에 영향을 미치더군요.

그래서 급식을 남기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정했습니다.

 

  • 오늘 나온 반찬은 한 가지씩 골고루
  • 밥의 양에 비례해 적절히
  • 많이 먹고 싶을 땐, 일단 정량을 받고 뒤에 다시 받기 (일부러 뒤에 줄서서 싫어하는 반찬이 떨어지기를 기다리지 못하게)
  • 국은 건더기만 먹어도 됨

 

당연히 점심시간이 다 끝나도록 반찬 두어 가지와 씨름을 하고, 칭얼대고 징징거리고, 친구에게 대신 먹어달라고 하고, 입에 물고 화장실에서 뱉고, 제가 밥을 먹기 위해 고개를 숙이는 순간 잔반통에 버리고. 난리도 아닙니다. 편식 습관을 고치는 것이 집에서도 고쳐지지 않는데, 어찌 학교에서 되겠습니까.

원래, 습관 고치는 건 오랜 인내와 끊임없는 관심뿐인지라, 다섯 수저만 먹어, 두 개만 먹어, 오늘은 세 개야. 짧게는 한 달, 길게는 세 달 고생해서 급식을 먹도록 합니다.

 

무조건 먹으라 한다고 해서 먹지는 않습니다.

위의 활동 (1)~(4)는 수업 시간과 다양한 활동으로 여러 차례 경험하게 됩니다. (5)~(6)은 급식시간 전이나 자치활동에서 한 번 쯤 다뤄주어야 할 활동 주제입니다. 좋아하는 반찬을 먼저 입에 넣고, 싫어하는 반찬을 더 넣어 맛을 합쳐보게 한다거나, 반찬 먹는 순서를 바꾸어 맨 마지막에 좋아하는 반찬을 먹도록 하는 제안을 함께 해봅니다.

결론적으로 본다면,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편식 아이들의 성격적인 문제와 행동이 많이 개선되었습니다. 그런데, 효과를 거두는데 있어서 교사 자신이 편식하지 않는 습관이 되어 있기 때문에 아이들도 ‘따라서’ 배우게 된 영향도 크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가리지 말고 골고루, 받을 만큼 받고, 남기지 않는 습관은 ‘교사’에게도 필요한 ‘본보기’ 교육 중 하나입니다.

청소는 벌이 아니에요

당연히 해야 할 일

교실청소가 벌?

어릴 적 가장 이해가 가지 않는 벌이 ‘교실청소’ 였습니다. 시험을 잘 보지 못했거나 숙제를 안해온 친구들은 수업 후에 남아 교실을 청소하고, 나머지 친구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죠. 운동장에서는 먼저 나간 친구들이 뛰어 놀고 있고…

한마디로, ‘청소’는 벌이 아니라 누구든 당연히 해야 할 공동체 활동입니다.

사용한 물건을 제 자리에 정리하고, 나로 인해 더럽혀진 곳은 내가 깨끗이 닦아 놓는 교육만큼 책임감과 공동체의식을 길러주는 활동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내가 소홀히 하면 다른 친구들이 피해를 보게 된다는 것 또한 매우 멋진 경험이지 않을까요?

물론, 교실을 지저분하게 어지럽힌 아이에게 벌은 당연히 청소가 되겠죠. 성취도가 낮거나 숙제를 못했다는 이유로 청소는 결코 벌이 될 수 없습니다.

청소를 못하는 아이들

새 학기가 시작되면, 우리 모두가 함께 사용할 공간의 의미로 아이들과 청소를 함께 합니다. 다 같이 모여서 바닥도 쓸고, 손걸레로 책상과 가구를 닦기도 하고, 운동장에 나가 우리 반 청소 구역을 정리하곤 하는데, 해가 갈 수록 놀라운 것은 바닥 빗자루질과 걸레질을 할 줄 아는 친구들이 점점 늘어난다는 점입니다.

  • 빗자루질은 휴지조각 말고도 바닥의 보이지 않는 흙먼지까지 모두 쓸어내야 함.
  • 교실 앞에서 뒤로, 중앙에서 바깥으로 빈 곳 없이(쓰레기나 먼지가 보이지 않더라도) 쓸어내고 벽에서 모아 쓰레받이로 담기.
  • 빗자루는 바르게 잡고 빗자루 솔이 바닥에 평평하게 맞닿아 넓게 쓸어야 함. (의외로 반대로 잡고 쓸어내는 친구들이…)
  • 대걸레는 고인 물에 걸레를 자루로 꾹꾹 눌러 두 번 빨아 헹구고, 발로 밟아 물을 짜내야 함.
  • 대걸레는 바닥을 쓸고 난 뒤에 흔적과 남은 먼지를 지우는 것이지 물을 바르는게 아니므로 힘주어 밀어 닦아내야 함.
  • 손걸레는 세 번 접어서 한 면씩 8면으로 고르게 닦아야 손에도 잘 맞고 깨끗하게 닦을 수 있음.

뭐, 이런 방법들이 있잖아요?

이런 방법들을 아주 어린 시절에 배우지 않으면, 언제 배울 수 있을까요? 그리고, 초등학교 시절 청소라는 벌을 피한다고 해서 평생 청소하지 않는건 아니죠. 자기방, 집, 사무실, 공동시설 등 어디든 내가 봉사하고 힘을 쓸 수 있어야 하지 않을지.

벌과 벌이 아닌 것?

실수와 노력했지만 완수하지 못한 것은 벌을 받을 이유가 없겠죠. 기회를 한 번 더 주면 되는 일입니다. 실수가 연속되어 발생하는 잘못과 일부러 해오지 않는 경우가 벌을 부르는 태도입니다.

  • 청소 – 교실을 더럽히거나 어지럽혔을 때에만…
  • 글씨쓰기 – 글씨를 대충써서 자신도 읽지 못할 정도로 성의가 부족할 때…
  • 일기쓰기 – 당연히 써야 하는 것이니 벌이 될 수 없죠.
  • 사탕사오기 – 아이가 무슨 잘못을 했기에 사탕을 사와야 하는거죠? 벌이 될 수 없습니다.
  • 자아비판문(반성문?) – 반성이라는 것은 돌이켜서 생각해 보는 것을 말하죠. 돌이켜 생각해서 표현(말)해보고 사과의 의미로 다른 아이에게 편지를 쓴다거나 하는 순화된 활동으로의 유도 없이, 그저 죄송합니다/잘못했습니다를 반복해서 쓰도록 하는 반성문은 아무런 교육적 의미가 없습니다.
  • 기합- 손들고 서 있기, 무릎꿇고 앉아있기는 신체적 고통보다 모욕감이 더 크고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차라리 한 대 맞는게 나을 정도죠. 벌이 아닙니다.
  • 체력단련 – 무언가를 완수하지 못하는 것은 인내심과 집중력 저하 등의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신체적인 발달 불균형에서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평소에 운동하기 싫어하면서 나태한 친구라면, 50m 전력질주로 기록을 깨도록 하는 (진짜) 체력단련이나 우리 반이 정한 3종 경기 코스를 제한 시간 내에 완주하도록 해서 성취감과 신체 발달을 꾀할 수는 있겠습니다. (윗몸일으키기 20회 + 팔굽혀펴기 10회 + 50m 전력질주 = 기록)

아이들이 벌을 받아야 할 이유가 얼마나 있을까요? ^^; 당연히 해야 할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면, 벌이라는게 존재할 필요가 없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그럼, 당연히 해야 할 것들이 뭐가 있을까요?

 

예쁘게 글씨 쓰기 수련

천재는 악필이다!

스스로 천재라고 생각한다면 얼마든지 악필을 가지고 살아도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글씨를 예쁘게 쓰려는 노력은 매우 중요한 과정이고, 나를 남에게 보여줄 수 있는 하나의 잣대입니다.

글씨쓰기는 ‘미적감각의 조화’, ‘소근육 협응력’, ‘완급과 인내’의 결정체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큰 도화지에 아름답게 그림을 그리기는 어렵겠지만, 1cm도 안되는 선과 점과 곡선을 하나하나 반듯하게 그리기를 어려워 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인내와 절제, 성취

어린 시절, 예쁘게 글씨쓰기를 배우는 시점은 문장도 아니고 문단도 아닌, 하나의 낱말 정도입니다. 욕심이 지나쳐 손이 아플 정도로 많은 글씨를 쓰는 것은 올바르다고 할 수 없겠지만, 아이가 충분히 해낼 수 있을 만큼이라면 얼마든지 노력할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 한 글자와 낱말을 완성하기 위해 집중하고 노력하는 것 자체로 인내를 배울 수 있겠고,
  • 획의 나아감과 멈춤, 둥글게 만나도록 애쓰는 과정에서 절제를 배울 수 있겠고,
  • 낱말이 완성되어 조화됨을 느끼며 성취감을 경험하게 될 겁니다.

손 끝에서 느끼는 아름다움

바르고 곧은 획과 자형을 갖추어나가는 것 자체에서 균형과 조화를 이해하고 내 손 끝에서 이루어지는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힘주면 진하고 굵고, 힘을 빼면 흐리고 가늘어짐을 글씨에 조화시켜 아름다운 글씨를 생각해 내도록 도와주세요.

  • 샤프는 글씨의 강약을 조절할 수 없으니, 반드시 연필을 사용해야 합니다.
  • 연필은 나무의 질이 무르고 심이 너무 딱딱해 손가락이 아프지 않는 것이 좋겠고,
  • 가느다랗고 디자인이 예쁜 연필은 손을 아프게 합니다. 6각연필이 가장 무난하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글씨, 잘 썼네”는 칭찬도 아니고 격려도 아닙니다. “이응이 아주 동그랗구나”, “세로 획이 반듯하구나”, “가로 획이 좀 더 길어야 안정감이 있겠다”처럼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주시고, 글씨 배우는 아이들이 중얼거리면서 반복하면 점점 예쁜 글씨로 바뀌어 갑니다.

소근육 발달과 협응력

그림을 그리거나 만들기를 할 때, 유독 금새 싫증을 느끼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심리적으로 그리기와 만들기 활동이 싫어서 그런 경우도 물론 있겠지만, 손이 제 맘대로 되지 않아 고통스러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작은 색종이에 풀을 칠하지 못하고 손에 이리저리 묻히다가 작품을 망치는 경우, 붓으로 색을 칠하는데 밑그림에 맞게 칠하지 못해 우둘두둘하게 그려지는 경우에 끝까지 노력하는 아이들보다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재미없어요’, ‘다른 것 해요’, ‘난 미술이 싫어’라는 반응이 훨씬 많습니다.

  • 눈으로 보고 손끝으로 옮기는 습관은 바른 글씨쓰기를 통해 충분히 가능합니다.
  • 손가락에 힘이 없어도 글씨를 억지로 꼭꼭 눌러쓰지 않도록 하여, 흐릿하더라도 바르게 잡고 써야 합니다.
  • 손가락을 너무 연필심 가까이 잡으면 글씨가 보이지 않아 눈을 바짝 대게 됩니다. 넉넉히 잡고 흐릿하게 쓰면 됩니다.
  • 글씨를 쓰다가 지치면 용수철 그리기나 격자 그리기, 가로긋기, 세로긋기 등으로 시원하게 마음을 정리하고 다시 쓰면 됩니다.
  •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쉽게 지치고 힘들어 합니다. 쉬다가 쓰다가 쉬다가 쓰면서 서서히 완성되어 가는 것을 보는 것도 좋습니다.

워드프로세서와 손글씨, Font

글씨를 쓰지 않으려고 워드프로세서를 이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보다 디지털화가 쉽고, 빠르게 작성할 수 있고, 수정이 용이하기 때문입니다. 나이들어 경험하셨겠지만, 분명한 사실은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펜 끝에서 나옵니다. 회의실이나 사무실이나 연수원에서 노트에 펜으로 써내려가며 그려낸 그림이 워드프로세서나 프레젠테이션 도구로 제작하는 밑그림이 됩니다.

경험해 보셨겠지만, 어릴 적 부터 지금까지 필체가 여러 번 바뀌었을 겁니다. 저도 어릴 적부터 필체가 4~5번 정도 바뀌었는데요, 어느 날 더 멋진 필체를 보고 따라 쓰다가 조금 바뀌고, 손감각에 맞게 또 살짝 변형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바뀌는 과정에서 남들이 읽기 편한 필체와 간격, 크기를 깨우치게 되고 워드프로세서의 서체(font)의 활용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 글씨를 예쁘게 쓰다보면, 미적 감각을 살려 도해 그리기 쉬워집니다. 도해는 나와 다른 사람간의 소통을 원활하게 해주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며 기능입니다.
  • 워드프로세서도 아름답게 작성해야합니다. 가장 아름다운 서체, 자형, 문서배치는 손글씨로 이것 저것 써본 사람만이 제대로 찾아낼 수 있습니다.

대대대대한한한한(x) 대한민국대한민국(o)

글씨쓰기를 연습하는 교본 중에 펜글씨 교본은 썩 좋지 않아보입니다. 서점에 가시면 학년별로 국어교과서의 낱말과 문장을 제시해 글씨체를 예쁘게 바꿔주는 서적이 있습니다. 종이도 가볍고 살살 써도 잘 써집니다. 교실에서 아이들과 매우 유용하게 사용하였는데,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 대대대대 한한한한 민민민민…으로 연습하면 안됩니다. 빨리 쓰려고 요런 수를 많이 쓰는데, 글자는 균형이고 어려운 낱말을 반복해서 연습하는 공부입니다.
  • 게다가 세로로 대대대대 한한한한…쓰기는 우리가 세로쓰기가 기본이 아닌이상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가로쓰기로 옆 글자와 전체적인 균형을 갖추도록 써야 합니다.
  • 띄어쓰기를 분명하게 해야 합니다. 너무 과하게 띄어 쓸 필요는 없지만, 띄어쓰기도 반드시 알아야 할 맞춤법이기 때문입니다.

무공 수련과 글씨 수련

공부 = 쿵푸

공부를 중국말로 쿵푸라고 읽습니다. 쿵푸의 고수는 공부의 고수가 되는 셈이죠. 겸손한 마음가짐으로 훌륭한 스승에게 제대로 배워 외공과 내공과 경공을 조화롭게 수련해야 공력이 쌓여 고수가 될 수 있습니다.

글쓰기 고수가 되려면, 세 공력을 쌓아야 하는 법…

  • 두뇌와 팔과 손가락 근육의 단련을 통한 외공
  • 참고 이겨내 아름다움의 깨달음을 얻는 내공
  • 아름답고 다양한 글씨 쓰기를 생활에 실제 활용하는 경공

내가 못쓰니, 아이도…

글씨쓰기. “우리 아이는 원래 못써요”가 아니라 “내 자신이 못쓰니 아이도 대충쓰라”며 방치한 것일 수 있습니다.

아이가 성장해 성공과 실패를 좌우 하는 것은 손끝(디테일)에서 결정됩니다. 아이의 손끝을 사랑해 주시고, 6학년 아이들도 글쓰기 교본과 일기장에 바른 글쓰기를 하다 보면 확실히 달라지고, 행동과 마음과 말투도 달라집니다.

우리 학급의 이야기였습니다.

대명사를 줄이고, 상세하고 명확하게 말해요.

친절하고 상세하게

교실에서 아이들이 교사의 말을 잘 못알아 듣나요? 혹시, 대명사를 너무 많이 사용하지 않는지 생각해 봅시다.

  • “길동아, 저 것 좀 가져다 주겠니?”
  • “아니, 저 것… 응… 그 것 말이야…”
  • “길동아, 이리 와보렴…”

교실에서 발생하는 흔한 대화입니다.

이렇게 말해보면 어떨까요?

  • “길동아, 교실 뒤에 있는 가위 바구니 가져다 주겠니?”
  • “길동아, 잘 들리지 않아서… 선생님 가까이 와보렴…”
  • “좋았어, 방금 발표한 내용교실 앞에 나와서 한 번 더 말해줄 수 있겠니?”

간혹, 아이들이 제 말을 잘 듣지 않는다며 ‘속상하다’, ‘화가난다’ 등의 표현을 사용하시는 선생님이 계십니다. 대화를 나누다보면 습관적으로 ‘이 것, 저 것, 여기, 저기’와 같은 대명사를 너무 많이 사용하시거나, 말을 아끼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생각을 아껴서 (머리속으로) 말씀하시지 않나 생각해 보실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교실에서 아이들과 소통하는 가장 기초적이고 빈도 높은 수단이 ‘대화, 말’, 그 다음이 ‘행동, 몸짓’이 되겠죠. 아이들이 이야기하는 친절한, 자상한, 좋은 선생님도 ‘말을 어떻게하느냐’가 결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주거니, 받거니

제대로 알아 들을 수 있도록 말하는 것은 교사의 매우 중요한 습관입니다. 아이들에게 말하는 법을 가르치기 전에, 내가 먼저 말을 잘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일 년동안 함께 생활하고 2월이 되면, 이미 아이들은 나의 말투를 따라하고, 내가 말하는 방식대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그 만큼 보여지는 가르침이 중요합니다.

  • “선생님 앞으로 가까이 와주겠니?”
    (“이리 와!” 라고 하시는 분은 안계시겠죠?)

하면 아이들이 꾸중이나 칭찬에 따라 가까이 다가서기도 하고, 좀 멀리 다가오기도 합니다. 꾸중을 들을 것 같다고 생각되면, 멀찌감치 다가오게 되죠.

  • “더 가까이 와보렴~”

친절하게 말씀하신 것 같지만, 한 번 용기를 낸 아이에게 또 한 번 용기를 내도록 (본의 아니게) ‘강요’하신 셈이 됩니다. 아이까지 모자란 거리만큼 선생님이 다가서면 어떨까요?

 

50:50

수업시간에 가르치는 것이 50이라면, 내가 평소 행동하고 보여주는 가르침이 50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말투, 행동, 몸가짐, 표정… 아이들은 이런 것들을 더 빨리 알아차리고, 여기에 더 많은 감정을 느낍니다.

아이들이 내 말을 못알아 듣는다기보다, 내가 아이들의 수준에 맞추지 못했다고 생각하시고… 불분명하게 말했다 생각되시면, 부끄러워마시고 바로 같은 말을 한 번 더 반복 해주시거나 분명하게 바꾸어서 말씀하시면 좋겠습니다.

 

맥노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