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선생님과 자상한 부모의 ‘아이들과 묻고 답하기’

교직에 있으면서 아이들이 나에 대한 평가는 대부분 긍정적이었는데(믿거나 말거나), 그 중 대표적인 키워드 하나를 들자면 ‘친절한’ 선생님이었다. 허투루 군것질 거리를 베푸는(?) 법도 없었고, 꽤나 고지식한 편이라 아이들에게는 다소 엄격한 편이었는데도 말이다. 복도에서 마주친 저학년 꼬맹이들도 ‘친절한’ 선생님이라 하니, 이쯤 되면 나름의 요령은 있지 않았겠나 싶은 생각이 들어 하나 둘 되는대로 꺼내 정리해 보려 한다.

 

< 친절한 선생님과 자상한 부모의 ‘아이들과 묻고 답하기’ >

 

아이들과의 커뮤니케이션 코드 중에 가장 명확한 것이 바로 대화인데, 화법에 대해서 연구를 했다거나 학위가 있다거나 깊이 공부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십 수 년의 교직경력을 통해 아이들과의 친절한 교실 대화법을 심플하게 정리하자면…

  1. 내 머릿 속에서 내가 한 대답은 나에게만 들린다.
  2. 갈팡질팡 길을 잃지 않도록 하자.
  3. 예상치 못한 대답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터득해라.
  4. 생활지도에서 뻔한 질문은 그냥 정의하는게 낫다.

교실 대화법이지만, 아이 키우는 입장에서 내 아이와 대화를 연결지어보면 결국 일맥상통한다.

묻고 답하기가 대화의 한 범주이지만, 작은 대화의 시작도 묻고 답하기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으니 무게를 문답에 두어보려 한다.

 

내 머릿 속 대답은 나에게만 들린다

우선, 명확하게 질문하자

수업을 진행할 때, 머릿 속에서 이미 대답해버리고 아이들에게 이렇게 질문한다.

(사진을 한 장 보여주며)

“얘들아, 이게 뭐지?”

대짜고짜로 ‘이게 뭐냐고?’ 이건 일단 성의있는 질문도 아니고, 창의력을 키워주는 질문도 아니다. 사실, 교사도 사람인지라… 듣고 자란 습관대로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이야기해주지 않는 한, 본인이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실내 놀이터나 식당에서 부모와 자녀들의 대화를 들어보면,

  1. (메인 질문이 짧고) “그거, 이리 가져와”
  2. (보충 질문이 여럿이고) “아니, 손에 들고 있는 거! 아니, 반대쪽 손! 그래, 그거!)
  3. (아이탓으로 마무리)  “너는 왜 한번에 못 알아 듣니? 좀 제대로 해라.”

이런 질문 뒤에 엉뚱한 대답이 나오면, ‘우리 아이들이 엉뚱해서…’라고 평가한다.

다시말해, 질문은 분명히 불필요한 요소를 통제해야 한다.

  • 제시된 자료가 사진이라는 것,
  • 메시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
  • 우리가 다 같이 보아야 한다는 것,
  • 답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미리 통제하면,

정답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이 사진 속의 인물들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싶어 하는 것일까?”

 

행동을 기대할 때는 구체적으로

또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면,

(동기를 부여할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고)

“자, 이제 우리가 무엇을 공부하게 될까?”

개인적으로, 어떤 대답이 나올지가 더 궁금하다. 질문하는 사람의 머릿 속 대답은 우리에게 들리지 않는다. 적어도 아이들에게 힌트로 남겨주어야 하지 않을까?

더 중요한 것은, 질문 속에서 상황을 다시 한 번 정리해 주어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거나 놓친 아이들을 모두 데려갈 수 있다.

상황이 다양하기 때문에 정답은 아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질문하고, 질문을 답에 포함시키도록 하기를 제안한다.

“지금까지 들은 인물들의 대화를 통해서, 지금부터 우리가 어떤 것들을 찾아보게 될까?”

 

올바르게 질문하려면 나부터 정확히 알아야 한다

3 ○ 2 = 5

“자… 더해야 할까, 빼야 할까…?”

기호와 약속은 어릴 때부터 익숙해져야 한다. 특히나, 선행학습이나 가정에서 보충하여 가르치는 경우는 더욱 주의해야 한다.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도식이나 그림이 아니라,  저렇게 기호화 하여 제시했다면 거의 마지막 단계로 봐야 한다. 이 단계부터는 더하고 빼는 문제가 아니라 수학 기호의 사용과 약속의 단계로 넘어왔다. 그에 따라 질문도 정확히 제시해야 한다.

다시 다루겠지만, 수학은 생각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이 우선이고, 모든 사고가 끝난 뒤에는 약속된 기호에 따라 정리해 두는 것이다. 질문은 이렇게 해야 옳다.

“저 동그라미 안에 어떤 (수학) 기호를 사용하면, 5와 같게 될까?”

수학기호에 대한 정의는 매우 중요하다. 일부러라도 반복해서 +, -, ×, ÷ 에 대해 ‘기호’, ‘약속’ 임을 설명해 주어야 한다.

 

갈팡질팡 길을 잃지 않도록 하자

여러 작은 질문이 연결되는 경우에, 양떼를 몰듯 자연스럽고 분명하지만,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며 나가야 한다. 잠시 옆길로 빠져야 할 일이 생기거나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큰 그림을 잊지 말고 가던 길을 꿋꿋하게 밀고 나가 마무리 지어야 한다.

나 혼자 흥에 겨워 이리 저리 헤매고 다니다보면, 먼저 아이들이 대혼란에 빠지게 되고 자신은 곧 멘탈 붕괴에 이른다.

대개 이런 기준에 따라 연속 질문을 구상해 두면, 길을 잃지 않는데 도움이 된다.

  • 먼 곳에서 가까운 곳으로
  • 과거에서 현재까지
  • 쉬운 것에서 어려운 것으로
  • 큰 개념에서 작은 개념으로 등등

역시 주의할 점은 머릿 속에 내린 대답에 갇혀서, 아이들에게 불분명하게 질문하지 않도록 노력하자.

이런 꿋꿋한 의지를 꺾는 엉뚱한 질문이 끼어들어 혼란의 그림자가 다가오더라도 꿋꿋이 이겨내야 한다. 다음에서 처럼…

 

예상치 못한 대답을 받아들이는 방법

간혹 이야기 중에, 문답 중에 갑작스럽게 날아오는 엉뚱한 대답은

  • 질문이 잘못되었거나,
  • 정말 예상하지 못한 멋진 생각이거나,
  • 말장난으로 반 전체를 길 잃게 만드는, 나쁜 대화 습관일 경우다.

 

잘못된 질문에서 시작되는 경우

질문이 잘못되었다면, 지체 없이 정정해서 다시 질문해야 한다. 잘못된 질문을 억양만 바꿔가며 되묻지 말자. (정작 본인은 모르는 경우가 많다) 딱, 봐서 분위기가 이상하다 싶으면, 질문이 잘못된 것이라고 보면 거의 틀림이 없다.

(아이들은 잘못이 없다)

“얘들아, 이게 뭐지?” (1)

“……”

(침묵 뒤에) “사람들이요…?”

“아니, 이게 뭘까?” (2)

“……”

“아프리카 사람들이요…?”

“어? 뭐라고? 이게 뭔지 모르겠니?” (3)

(이렇게 나가선 끝을 알 수 없다. 1에서 바로 이렇게 넘어왔어야 한다)

“아, 얘들아 미안, 다시 생각해보자… 여기에 모여있는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 모습일까?”

 

아이들이 예상치 못한 멋진 생각을 격려

전혀 예상치 못한 멋진 생각이라면 한 수 배우는 마음으로, 진심어리게 (아이라고 하더라도) 존경을 표하며, 다른 관점으로 새롭게 도전한 점을 높게 평가하여 정리함으로써 칭찬하면 된다.

여기서는 평가 후 정리 방법이 중요한데, 칠판 한 구석이나 교사 노트에 멋진 생각을 반드시, 무슨 일이 있어도, 아이가 보는 앞에서 즉시! 적어두도록 한다. 나는 주로 칠판 한 쪽 모서리를 이용하는데, 잠시 보류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정말, 멋진 생각인데? 좋아, 다시 본론으로…”

이게 아니라…

“이 상황을 그런 관점에서도 볼 수 있겠구나! 그렇게 보니 생각해야 할 부분이 많아지는데, (칠판에 적으며) 지금은 다같이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을 함께 살펴보기로 하고, oo의 생각은 조금 있다가 선생님과 좀 더 자세히 들어보도록 하자~? (동의 구하기) 어때? 괜찮겠지?”

멋진 생각을 한 친구의 태도에 대해 교사가 아낌없이 ‘존중’해주어야 한다. 그래야 다른 친구들도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고, 교과서에도 나오지 않으며, 생각을 통해 이끌어낸 관점에 박수를 보낼 줄 알고 모두가 ‘즐길 줄 알게’ 된다. 이게 탐구이고 배움이 아닐까?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법. 쉬는 시간이 되거나 자유 활동 단계가 되면, 아이 옆에 다가가 아까 그 생각에 대해 조용히 물어야 한다.

  1. (앞서말한) 무릎앉기와 눈높이 맞추기는 필수
  2. 충분히 들으면서 (뻔히 알고 있지만, 생각을 더할 부분이 있다면) 궁금한 부분을 아이에게 묻고,
  3.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과정과 ‘출처’를 파악해서
  4. 직접 경험한 것이라면 경험하게 해 준 사람의 노고까지 존경을 표하는 디테일한 과정이 필요하다.

여기서 나는 한 가지 덧붙이는데,

  1. (학원에서 배운게 아니라면) 쉬는 시간이 끝나고 다음 수업이 시작될 때,
  2. 칠판 한 구석에 적어 둔 내용을 아이들에게 상기시키며,
  3. 지금까지의 대화를 아이들 앞에서 이야기하도록 한다.

아이의 발표 후에는

  • 스쿨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을 알차게 활용하여 노력한 점,
  • 도서관의 백과사전을 사용한 점,
  • 부모님과의 시간을 뜻깊게 받아들인 점 등

모두가 본받아야 할 점들을 곁들여준다. 각별히 주의하는 부분인데, 아이들 중에 부모님과 시간을 함께 보내기 어려운 경우가 있으므로, 어디를 다녀온 것이 아니라 부모님과의 시간을 소중히 생각하고 뜻깊게 받아들였다는 점에 방점을 찍어 강조한다.

(그럴리는 없겠지만) 부모나 교사의 자존심 대결로 받아들이고, 어떻게든 아이의 생각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거나, 오답으로 결론 내리려고 전전긍긍하는건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생각이다.

교실은 먹이사슬 속에 경쟁하는 야생이 아니라,

다 함께 배우며 탐구하는 평화로운 공간이다.

그런 의미에서 부모와 교사의 두뇌투명하고 말랑말랑 해야만 한다. 우리 어릴 적, 우리 자신들이 부모, 교사와 경험했던 가치있는 활동들을 모두 꺼내 긍정적인 부분은 더 부각시키고, 부정적인 부분을 반성하여 모두 재구성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잘못 길들여진 나쁜 언어습관을 극복

가장 큰 문제는 어릴적부터 길들여진 아이들의 나쁜 대화 습관이다. 엉뚱한 이야기를 꺼내면 친구들이 ‘반사적’으로 반응하는 것을 ‘웃겨서’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강연자의 주의집중식 개그코드는 대화의 주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웃음을 유발해 뇌를 환기시키는 과정에서 더 중요한 무언가를 던지기 좋은 상태를 만드는데 웃음코드가 사용되는 것이다.

주제와 관련없는 ‘면박주기’, ‘헛점들추기’, ‘혼란유도하기’의 언어습관은 그 자리에서 즉시 고쳐주어야 한다.

  1. (동요하지 말고) 감정을 싹 빼는 것이 우선이다.
  2. 던져진 나쁜 말 자체를 진행중인 수업과 연결시킨다.
  3. 다같이 판단하도록 해보고,
  4. 결과를 전달하면, 끝.

교사가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면, 일단 상황은 마무리 짓기 어렵다. 화를 내라는 것이 아니라, 길을 잃지 말라는 뜻이다.

(엉뚱한 말에 웃음바다가 잦아들기를 기다려서)

“아무개가 (한 말 그대로 전달하며) 라고 지금 이야기 했는데, 지금 대화의 주제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아무개가 설명해 주겠니?”

(이럴 때, 꼭 같은 무리가 또다시 말을 던져 웃음바다를 만들게 마련이다)

“아무개도 (한 말 그대로 전달하며) 라고 지금 이야기 했는데, 지금 대화의 주제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말해 줄 수 있겠지?”

하지만, 현실에서는 늘 분위기 흐리던 녀석들이라 사소한 경우라도 감정조절에 실패하게 되고, 절대로 이런식으로 말할 수 없다. 게다가 웃음바다가 끝나기를 기다리다 보면, 감정이 복잡해져 컨트롤이 불가능해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올바르지 못한 피드백인 ‘웃음’은 중간에 확! 끊는게 여러모로 좋다.

(웃음바다가 잦아들기를 기다리기 전에)

“응? (못들은 척) 뭐라고? oo야, 다시 한 번 말해줄래? 나만 못들은 것 같아서 그러니, 다시 말해보렴.”

(침묵 + 눈 마주치기 + 기다림) “……”

(두 번 말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혹시, 들은 사람 있니?”

(다시 말했을 경우에는) “좀 더 크게~ 다시? 잘 안들리는데? (하면서 가까이 다가간다)”

이쯤 되면, 다시 말하려 하지 않을 뿐더러 다시 듣기를 원치 않는 분위기로 흘러간다.

“지금 말 한 것이 우리가 지금 나누고 있는 이야기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말해주겠니?”

(일단 시선들이 모이면, 이런 아이는 100% 우물쭈물 하게 된다)

(감정을 싹 빼고) “다른 친구들에게 웃음을 주고 싶다면, 수업시간이 아니라 정말 웃겨야 할 상황이 되었을 때를 정확히 노려서, 최선을 다해주면 좋겠다.”

또는 그런 류의 “현재 상황과 어울리지 않음”을 매우 짧게 짚고 넘어가면 된다. (그래서 나같은 경우에는 ‘할 때 하고, 놀 때 놀자’라는 매우 심플한 학급운영의 대전제를 만남과 동시에 제시한다)

이런 단계는 몇 번이면, 더 이상 반복되지는 않는다. 학년 말까지 가져가는 친구는 단 한 명도 없다. 돌발 행동으로 웃어 넘기려는 것이었는데 진지한 대화로 이어지는 것이 반복되면, 일단 본인 스스로 즐겁지 않기 때문이다. (수업시간에는 개그도 다큐로 받아들이는 이상한 분위기)

아이들의 나쁜 습관이 자라는 것은

아이 스스로 기르는게 아니라,

무관심과 귀찮음 속에 방치되기 때문이다.

모르기 때문에, 나쁜 습관이 반복되는 것이다. 본인 스스로 깨닫게 되면, 아이들은 도덕적인 약속을 어른들보다 100배는 잘 지킨다.

여기서 주의 할 점이 하나 있는데, (제발) “선생님의 기분이 어떻겠니, 선생님 기분이 나쁘잖니, 엄마 입장은 생각해 봤니?…” 하지 말자.

분명한 것은 잘못 형성된 습관은 타협의 여지가 없이 바로잡아야 하며,

객관적으로 상황을 분명히 인지시킨 후에 자발적인 변화를 기대해야만 한다.

너와 나의 관계를 중심으로하는 주관적인 감정으로 바로잡기를 호소하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엄마와 선생님 앞에서만 말 잘 듣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면, 개인적인 관계와 기분, 감정을 이용하면 된다.

 

뻔한 질문을 하느니, 정의 내리는 편이 낫다

뻔한 질문은 두 가지 경우에만 써야 한다.

  1. (저학년이나) 놓친 아이가 있을 때, 반복 상기시켜주려고 쓰고…
  2. 학습내용 중에 중요한 내용을 강조하려고 쓴다.

아이들과 이런 저런 대화가 끝나고, (까먹기 전에) 곧바로 던지는 뻔한 질문은

“요것은 무슨 색?” > “빨강색”

“건너면?” > “안돼요!”

“선생님의 펼친 손가락 몇 개?” > “두 개”

이게 아이들 수준에 맞는 적절한 뻔한 질문이다. 이외의 상황에서는 가급적 뻔한 질문을 사용하지 않는게 좋다. 집에서든 학교에서든 반복되는 뻔한 질문에 아이들이 길들여지지 않도록 하자.

 

뻔한 질문에 길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는 뻔한 질문과 대답은 이런 게 있다. 많이 들어봤으리라.

“맛이 어때?” > “좋아요.”

“향기가 어때?” > “좋아요.”

“기분이 어때?” > “좋아요.”

뻔한 질문에는 (어른들도) 똑같이 대답한다. 심지어 TV리포터 조차도 아이들에게 이렇게 질문을 던지고, 대답하는 아이들도 저렇게 대답한다. 바로 뻔한 질문에 길들여진 아이들이다.

앞서 장황하게 이야기한대로 질문이 풍부하고 정확해야 한다. 그래야 질문에 자신의 생각과 감각을 더해 더 풍부하게 대답(표현)할 수 있게 된다. 질문하는 역할인 부모와 교사의 역량이 그래서 중요한 것이다. 부족하면 훈련하면 된다. 훈련하기 귀찮아 포기하는 것 조차도 아이들에게 그대로 전달 된다.

“맛이 어때?” > “딸기향이 많이 나서 많이 달콤할 줄 알았는데, 너무 달지 않아서 제 입맛에 잘 맛아요.”

“향기가 어때?” > “꽃 향기처럼 달지 않고, 풀 냄새처럼 상큼해요.”

“기분이 어때?” > “덥고 힘들긴 한데요, 신나게 뛰어놀 수 있어서 너무 즐거워요.”

아이든 어른이든 이렇게 무성의한 질문에 성의있게 대답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것이라 예상해 본다. 별 것 아닌(?) 대답이지만, 딱 봐도 뻔한 질문의 문제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뻔한 질문의 결정체, 잔소리

그런데, 이 뻔한 질문이 생활습관을 고치려는 대화로 이어진 것을 우리는 잔소리라 부른다.

“복도에서 뛰면 될까? 안될까?” (유도 질문)

“엄마가 뛰라고 그랬어?, 뛰지 말라고 그랬어?” (엄마의 말임을 강조)

“반찬 남기면 돼? 안돼?” (윽박 지르기)

강요하고 반복하는 질문이기도 한데, 뛰지 말라는 것이 참 모호한 정의다. 뛰면 안된다고 일단 답하여 상황을 모면하고 나면, 빠르게 걷는건 뛰는게 아니므로 정도만 약하지 결국 또 뛰게 된다. 뻔한 질문 덕분에 의도를 교묘히 피해갈 구멍이 생겨 버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강조할 부분이 무엇인지 확실히 해야 한다. 저 대화에서는

‘알아두자’는게 아니라, ‘실천하라’는게 핵심이다.

이렇게 질문하는게 옳다. (이미 다 알고 있으면서도 장난삼아 뛰는 것이므로)

“(정의내리기) 부딪혀서 다른 친구가 다칠 수 있으니까, 복도에서는 오른쪽으로 천친히 걷자.  (실천약속) 할 수 있겠지?

 

 

대화의 시작은 대부분 묻고 답하기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말하기 자체가 참 어렵다.

심플하게 정리하면, 대화는 ‘배려’이다. 답하는 아이의 입장을 헤아려 묻기 전에 나 스스로 답해보면 좀 더 친절해 질 수 있다.

부모가 어린 시절부터 이런 대화를 경험해 보았다면, 이런 과정이 체득되어 조금 더 나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부모로서의 역량을 길러야 한다는데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이번 기회에 평소 나의 대화법에 신경쓰고, 제대로 친절해 질 수 있도록 애써봅시다.

 

“Manners Maketh Man” – William of Wykeham

다른 사람이 구한 답 보다, 내가 찾아가는 과정이 중요해.

원의 둘레길이를 구하는 첫시간. 직선으로 된 물체의 길이에 대한 이해와 함께 종이에 그려진 원의 둘레를 구하는 방법을 찾아보는 활동을 해 봅니다. 10가지 정도 찾아보는 활동인데, 같이 한 번 찾아볼까요?  

1) 지름의 길이 × 3.14

  엥?  (어떻게 저런 답이 한 번에 나왔지?)

2) 실을 풀로 붙여 떼어내 직선 자로 길이를 잰다.

3) 긴 포장지 끈을 동그랗게 맞추어 잘라낸 뒤 길이를 잰다.

4) 원 그리는 자(둘레가 이미 계산된)를 하나하나 맞추어 본다.

5) 찰흙을 모양대로 얇게 펴 바른 다음 굳혀서 바닥에 굴려 잰다.

6) 종이를 칼로 오려내 직선 자에 한 바퀴 굴린다.

7) 1mm짜리 컴퍼스로 원 주위를 걷게 하여 잰다. (디바이더를 말하는 듯)

8) 칼로 원을 조각조각 잘라 직선으로 배열하여 잰다.

9) 1mm짜리 모눈 조각을 원 둘레에 이어 붙여 몇 개인지 확인한다.

10) 개미의 허리에 실을 묶어 개미가 한 바퀴 돌도록 하고 시간을 잰 다음, 직선으로 가게 하여 개미의 속도 구해 곱한다.

  지금 이 방법은 우리 반 아이들이 토의하고 묻고 답하고 서로 보충하며 찾아낸 답입니다. 이 외에도 여럿 있었지만, 물을 붓고 얼려서 구하는 것처럼 중복되는 것들은 뺐습니다. 1)번 대답이 가장 먼저 튀어나왔고, 2)~10)번 방법을 구하는 미완성의 첫 번째 방법이 나오기까지 의외로 긴 시간동안의 침묵을 참아내야 했습니다. 10)번 답은 정말 천재적이지 않나요?

  처음엔, ‘개미 여러 마리를 놓는다’로 시작했습니다. 자꾸 기어가는 개미를 어떻게 재지? 개미를 기어가게 놔두고 거리를 재서…? 그게 어떻게 가능하니? 원에 꿀을 바르자. 꿀을 따라 기어가게 해서? 속도를 재! 선생님! 속도를 재서 거리를 구할 수 있어요? 가능하지… 오고가는 대화 속에서 얻어낸 답입니다. 이런 생각을 막는 여러 요소 중, 선행 학습이 있습니다. 이미 알고 있으니 답을 말하고 뇌를 꺼버립니다. 그런데, 이런 습관은 정말 고쳐지지 않습니다. 이미 수학책과 익힘책을 다 풀어놓고, 다리를 떨며 책을 읽거나 장난감을 만지작거리며 놀고 있습니다. 이런 활동에는 거의 참여하지 않고, 생각을 잘 발표하지 못합니다. 친구들이 한심하다는 식으로 대답하기도 하고, 왜 꼭 굳이 저렇게 해야 하는지 반문하고는 합니다.

“다른 사람이 구한 답을 쉽게 얻는 건, 요리사가 어렵게 구운 쿠키를 공짜로 집어먹는 것과 같아”

라고 설명해 주지만, 그것과 이것은 다른가 봅니다. 선행학습에 길들여져 뇌 스위치를 장치한 아이들에게는 이런 탐구활동을 통한 계속적인 자극과 학원에서 배우지 않은 것들이 훨씬 더 즐겁고 자극적이라는 것을 심어주어야 하는 쉽지 않은 아이들이 되어버렸습니다.

했어? 안했어? – 교사의 언어습관

교사로서 아이들에 말하는 한 마디 한 마디 마다 혼신의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게 너무나 힘듭니다.

친밀감이 충분히 형성되어 교사의 언어 습관이 아이들에게 순화되어 있는 상태에서도 언어 습관이 그대로 복사되어 아이들의 대화 습관이 됩니다.

 

“그랬어? 안그랬어?”

“왜 그래? 어? 어?”

“그랬구나, 그래서 어땠는데?”

“그렇다면, 이렇게도 생각해 볼 수 있겠네?”

“그럴 리가, 정말 그랬단 말이니?”

“선생님한테 거짓말 하지마, 네가 정말 그랬다고?”

 

아이들의 언어 모방 능력은 정말 무시무시할 때가 많습니다. 두 돌이 안된 아기도 부모의 억양이나 단어를 따라하면서 배우기 시작하는데 신통하면서도 반성하게 됩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습관적으로 고급 어휘를 구사해야만 하는 팔자(?)입니다. 한자어가 섞인 어렵고 잘 사용하지 않는 말들을 사용하라는 의미는 아닙니다만,

 

대화에서도 가급적 문장을 완성하고

말끝을 흐리지 말고 명확하게 하고

학습에 필요한 어려운 낱말은 풀이해 주고 (칠판 기록)

긍정적인 단어를 주로 사용하고 (~말고 대신 ~하고)

같은 뜻의 낱말이라도 학년 수준에 맞는 교과서에 나오는 낱말로

동음이의어는 강약과 장단을 따지고 한자를 풀어주는 등

 

수준 높은 어휘는 아이들의 언어 습관을 바꿔줍니다. 대중매체와 인터넷에 과다 노출된 요새 아이들은 길게 말하는 습관이 되어 있지 않아, 단어와 억양으로 대화하다가 답답하면 욕설을 섞어서 대화해서 모두들 고민이 많은 시절입니다. 이럴 때, 교사의 지속적인 완성된 문장과 고급 어휘 사용을 경험하게 되면 학기가 마무리될 즈음에 자신의 생각을 풍부하게 말할 수 있는 상태로 진화시킬 수 있는 열쇠가 됩니다.

조금 더 가까이 가보자…

아이들이 학교에 도착해서 집에 갈 때까지 끊임없는 질문과 대답이 시작됩니다. 친구와 교사 간의 사소한 질문과 대답이 오고가며 대화가 되고, 놀이가 되고, 수업이 됩니다.

창의적인 발문 기법을 돕는 여러 이론들의 기본은 질문과 대답의 기본 개념은 내가 한 질문에 대한 성의 있고 올바른 대답을 반드시 들어야겠다는 무시무시한 목적이 아니라, 내 생각과 마음을 상대에게 전달하고 상대의 메아리를 듣기 위한 하나의 방식이라 생각됩니다. 질문과 대답은 반드시 쌍으로 돌아옵니다. 질문이 후덕하면 대답도 후덕하고, 질문이 매서우면 대답도 매섭습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발문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훈련하여 우아하게 첫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상태가 되었습니다만, 아이들과 마주한 현실에서는 질문을 던지는 입장인 교사가 아무리 멋진 질문을 생각해내어 우아하게 던지더라도 대부분 돌아오는 메아리 소리에 이성을 잃거나 흥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질문과 메아리 모두 우아했지만, 메아리 속에 섞인 원인 모를 단어들이 교사의 대뇌 전두엽을 자극하는 경우와 메아리 자체가 없을 때, 2차 질문을 어떻게 하느냐가 관건이 됩니다.

답이 여럿 나올 수 있는 질문인데도 “틀렸어요!”라고 깔끔하게 결론을 내려주시는 분이나, 지나간 질문의 대답을 하는 아이에게 “너 또 선생님 말씀 안 듣고 딴 짓했지?”하며 쏘아 붙이는 분은 아마 없을 겁니다.

 

“(이름을 불러주며) 철수! 기발한 생각인데?”

“그렇게 생각할 수 있구나! 일단 칠판에 적고. 다음?”

“이러저러한 것이 이렇다는 말이지?” (비록 빗나갔지만, 정답을 말한 듯 재정리하며)

 

질문의 범위가 너무 넓었기 때문에 대답이 우아하지 못했다면,

 

“좋아, 조금 더 범위를 좁혀보세요.”

“아쉽지만, 조금 빗나갔는데?”

“그것도 답이 될 수 있겠지만, 조금 더 구체적으로…”

 

때로는 웅성대는 와중에서 아무도 정답을 내지 않았지만, 마치 누군가 말한 것 처럼 슬쩍~

 

“그래, ooo 한다고? 좋아~ 가까이 가고 있어! (저는 이걸 환청신공?이라고 부릅니다)

 

질문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든다면, 부끄러워 말고 정정해 주세요.

 

“좋아, 질문을 조금 자세히 해 줄게요”

“(천연덕스럽게) 자, 그럼 이제 두 번째 힌트!”

 

갑자기 튀어나온 선행학습자의 분위기 깨는 대답의 경우,

 

“그래? 그건 아직 모르겠는데? 조금 뒤에 생각해보자.”

“혹시, 다음 장을 넘겨본 건 아니겠지? 한 계단씩 갑시다.”

 

간혹 이런 대답 같은 질문도 등장합니다.

 

“선생님, 점심시간인데요!”

“밥, 안 먹어요?”

 

위와 같은 엉뚱한 대답이 나올 땐, 아직 3월 첫 주겠지요. 습관 자체를 고쳐야 하거나, 그냥 재미로 이야기한 경우입니다. “남을 웃기는 방식은 여럿이 있지만, 지금과 같은 말로 열심히 수업을 듣는 여러 친구들을 배려하지 않고, 앞의 선생님을 무시하는 행동은 전혀 즐겁지도 않고, 세련되지도 않아요. 선생님이 너희를 존중하는 만큼 서로 존중해 주었으면 좋겠어요”라고 무섭게 쏘아 붙이면, 고쳐질까요?

안녕, 씩씩하네, 무겁지 않니?… – 빈말신공

교사가 되어 가장 많이 늘어나는 것 중에 하나가 ‘빈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복도를 오가면서, 교실에서 ‘눈’이 마주치면,

 

“오늘은 키가 더 자랐네? 골고루 먹어서 그런가?”

“이놈, 어제 늦잠 잤지? 다크 서클이 턱까지 내려왔구나.”

“웃으면서 다녀봐~ 넌 웃는 게 훨씬 이뻐.”

 

이런 ‘가벼운 인사말’이나 ‘친밀한 빈말’은 여러 이로운 점이 있습니다. 그냥 슥 지나가면서 관찰한 것을 한마디 툭 던지는 것 자체가 아이들에게 관심을 갖는 습관이 생겼음을 의미하고, 아이들은 이런 작은 부분의 접촉을 통해 교감을 형성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사실, 아이들에게만 통하는 건 아니죠. 어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업 시간에 집중하지 않고 딴 생각하던 친구들도 이렇게 형성된 깜 덕분에 친밀도가 높아져 더 집중하고 열심히 참여하는 경우도 많고, 집안 일로 마음이 어지러운 친구는 교사의 한마디에 마음을 잡는 경우도 많습니다.

여기에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아이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겁니다. 대놓고 무릎 맞대고 앉아서, “너 어제 밤에 늦게 잤니?”하면 어느 누구도 마음 편히 이야기를 꺼내기 어려울 겁니다. 그런데 지나가는 말로 툭 던진 한 마디는 당사자 이외의 다른 아이들이 주워 먹기도 합니다. 꽤 자주 주워 먹습니다. 곧바로 이런 말이 들려오죠.

 

“선생님! 철수 어제 새벽까지 LOL(온라인게임) 했대요.”

“음, 그걸 네가 어찌 알고 있누~~?”

“쟤도 했어요! 쟤네들 맨날 PC방 가요.”

“맨날 아니거든!”

“내가 어제 학원가는 길에 3반에 철수랑 가는 것 봤다니까.”

 

철수는 밤늦게까지 온라인게임을 즐기고, 집에서 게임을 말릴 부모님의 역할이 필요하거나 이런저런 사정들이 있겠고, 같이 즐기는 녀석은 누구고, PC방에 다니고, 3반 철수도 함께 어울리고… 이런 소중한 정보는 아이를 위해서만 사용되어야겠죠?

칭찬 포인트를 주겠어요. – 적절한지 고민하기

“잘한 모둠은 칭찬 포인트를 주겠어요!” 하며 또다시 조건을 붙입니다.

아직 시작하기 전이지만, 독려하고 더 노력하자는 의미에서 여러 포인트 제도를 사용하게 됩니다만, 목표는 나와 모둠이 무언가를 탐구하고 알게 되어 성취를 느끼는 것이 보상이지, 스티커가 보상은 아닙니다.

물론, 학년과 학급의 분위기에 따라 잘 먹혀들기도 합니다만, 학생으로서 탐구하고 공부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인지라 ‘상’을 받을 만한 훌륭한 일은 아닙니다.

게다가 ‘포인트’ 제도는 어느 정도 개수가 쌓인 후에 더 자극적인 보상이 없다거나, 다른 친구나 모둠과 경쟁하다가 ‘넘사벽’을 만나게 되면 그 효능이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스스로 자기의 노력을 나타내는 형태의 그래프는 괜찮아 보입니다. 자신의 상태를 표시하면서 다른 친구들과 비교하고, 단계를 마치면 스스로 하나씩 그래프를 채워나가는 것입니다. 독서나무(독서), 튼튼이나무(줄넘기), 지혜의나무(과제), 탐구나무(관찰일기) 같은 활동이 하나하나 완성될 때, 스스로 열매를 붙이도록 하는 자기 평가형 포인트가 더 바람직하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만약, ~하지 않으면… – 교사의 나쁜습관

가끔 한 마디로 끝냈을 말을 두 마디로 늘렸다가 손해를 보게되는 말이 있습니다. ‘조건’을 다는 말입니다.

 

“철수는 내일도 준비물 가져오지 않으면, 다시 집으로 보낼거야!“

 

잘 뜯어보면, 준비물을 가져오라는 훈계지만, 진짜 집으로 보낼지 의문스러운 협박입니다. 그냥 “내일은 꼭 준비물을 가져 오렴”하면 되지 않을까요? 그렇게 될 문제였으면, 왜 조건문을 달았겠습니까.

사소한 것들에도 습관적으로 ‘만약에’, ‘그렇지 않으면’과 같은 말을 넣게 되는 것을 항상 경계해야 합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은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서로 합의하면 대부분의 경우는 해결됩니다.

 

“내일은 꼭 준비물을 가져와야 한다. 알림장에는 적었지? 집에가서 알림장은 어떻게 한다고? 식탁위에 꺼내 놓는다! 따라해봐.”

“식탁위에 꺼내 놓는다!”

 

준비물을 가져오지 못한 원인에 대해 직접적으로 수정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결과에 집중하면 또 다시 문제는 반복되게 마련입니다. 조건문을 다는 것은 정말 주의하셔야 합니다.

일상의 모든 것을 지금 바로 – 일기쓰기

누구나 경험하셨지만, 일기를 하루 중 정해진 시각에 얼마만큼의 시간을 들여 쓰는 것은 의외로 어려운 일입니다. (물론, 이런 습관이 익숙한 아이들도 많습니다) 나에게도 어려운 일을 아이들에게 강요할 수는 없는 일. 하루 종일 책상 위에 일기장을 펼쳐놓고 하루의 일과를 낙서처럼 기록하도록 하였습니다.

친구가 내 일기장에 한 줄 써주기도 하고, 선생님의 말씀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을 적기도 하고, 수학 공책을 깜빡 잊고 두고왔을 때에는 수학 문제를 풀기도 하고, 생각도 적고, 동시도 적고…

하루하루 이렇게 낙서처럼 적어나간 일기장이 어느새 두툼해지자 아이들이 너무나 기뻐합니다. 다 쓴 일기장은 이어붙여서 일 년이 지나면 두툼한 책이 됩니다.

손으로만 쓰지 말고 무엇이든 기념이 될만한 것을 붙여보라 했더니, 영화관에 다녀온 날엔 영화 티켓을 붙여놓고, 음식점 넵킨을 붙여놓기도 합니다. 실잠자리를 잡아서 넓은 테잎으로 코팅하듯 붙여놓은 친구도 있었는데……. 꽃잎도, 나뭇잎도.

습관이 붙기 시작하면 완성된 몇 문장 이상 쓰도록 합니다. 새로운 내용을 쓰지말고, 낙서를 정리하거나 붙여놓은 것에 대한 설명을 달도록 했습니다. 그림을 그린 날에는 그림일기가 되었죠. 오늘 공부한 읽기 책의 내용 일부를 옮겨적거나 짜임새가 훌륭한 글은 전체를 옮겨적기도 합니다. (당연히, 글씨는 바르게)

이런 습관은 하루에 집중된 수업을 일주일이나 보름 정도의 장기 프로젝트로 늘리는데 많은 도움을 줍니다. 어떤 일이 있었지? 라는 친구들끼리의 물음도 일기장을 펼쳐보며 언제였다며 대답해주고, 이런 일이 있었다며 이야기를 나누는 활동 자체로 긴 시간을 내다보거나 돌아보는 능력이 생기는 것이죠.

독서록, NIE, 평화일기 모두 일기장 하나로 통합했습니다. 독서일기는 모서리에 독서 스탬프를 찍었고, 평화일기는 비둘기 스탬프를 찍었습니다. 일기는 쓰기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쓰다보면 일기가 됩니다.

조금 더 예쁘게 만들어 보렴.

수업 중 활동이 진행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아이가 손을 들고 이렇게 외칩니다.  

“선생님! 다했는데, 이제 뭐해요?”

번개같이 마친 아이. ‘벌써 다했니? 선생님이 먼저 한 번 볼까?’ 하며 아이 근처로 다가섰을 때, 저 멀리 보이는 연필로 대충 그린 졸라맨 캐릭터, 또는 책에 답만 적혀있고 책상 위에 여기저기 낙서된 수학 책상을 발견하게 되실 겁니다.  

공부는 다음의 습관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아주 작은 것이라도 정성을 다하고 나의 능력을 최대한 쏟아 내어 완성하려 노력하고 땀을 흘려 자기 자신에게 고마움을 느끼도록 하는 활동이면서 주위 친구들과 숨소리와 연필소리를 나누며 상호 배우고 발전하는 과정

해야 할 것을 빨리 마치고 스위치를 끈 아이.

결과적으로 보았을 때, 답은 맞았고, 빈 칸에 목적에 맞는 그림은 그렸고, 적어야 할 곳에 정확히 자신의 생각을 적긴 적었지만, 과연 그것이 충분한 활동일지 고민해 볼 이야기입니다.

한 아이가 먼저 끝냈기 때문에, 다른 친구들의 마음은 본의 아니게 조급해질 겁니다. 더 생각이 필요한 아이들은 자신이 뒤쳐졌다 생각할지도 모르고, 주변 친구들은 벌써 기웃기웃하며 그 아이의 그저 그런 결과물을 보고 하향평준화 하기 시작합니다.

꾸중하기도 그렇고, 어딘가 그 아이는 교사와의 상호작용을 원하거나 자신의 완성에 대해 인정받고 싶어 하는 심리가 작동하고 있을 터이니, 처음 몇 번은 “색을 칠해보렴”, “통통한 몸이 좋겠네, 추워 보인다” 면서 보다 노력이 필요함을 간접적으로 알려주지만, 번개같이 지그재그로 몇 번 칠하는 시늉만 하고는 다됐다며 보채기를 반복합니다.

수업 중 활동은 ‘네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해야 함’을 분명히 해주어야 하고, ‘무언가 위험하거나 긴급한 것이 아니라면, 선생님을 큰 소리로 여러 차례 부르거나 혼자 다 되었다면서 다른 친구를 조급하게 하는 것은 예절 바르지 못한 행동’이라는 것을 이해시킬 필요도 있습니다.

말로 설명하기를 좋아한다면, 소곤소곤 목소리로 설명을 연습하게 하는 방법도 있겠지요. 졸라맨을 그려놓고 ‘전 그림 원래 못그려요’, ‘더 이상 못하겠어요’ 하는 친구도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충분한 시간을 줄게요.

창의성, 창의지성, 창의… 어디나 ‘창의’라는 말이 많이 사용됩니다.

다각적인 문제해결력을 의미하는 건지, 기발한 아이디어 생산을 말하는 건지, 엉뚱한 천재성을 바라는 건지, 모두를 말하는 건지는 아직도 감을 잡을 수 없지만, 여러 정책들을 종합해 교집합을 찾아보면, 수업 중에서는 문제 해결력 쪽에 무게가 실리는 듯 생각됩니다.

그런데, 창의성을 이야기할 때 많은 경우에서 간과하고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시간’입니다. 창의적으로 생각하라며 문제를 여기저기 던져놓고, 이제 좀 감을 잡으려는데

“이제 그만하고 여기를 보세요.”

하는 것이 반복되면, 누구라도 더 이상 생각하기 싫어질 겁니다.

창의력이 발휘되려면 제대로 통제된 상황과 충분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찾아가는 과정도 필요하고, 찾은 듯한 기분을 느끼며 검증할 시간도 필요하고, 검증했어도 더 나은 방법을 생각해보고, 친구의 생각과 비교해 발전시키는 과정이 순간적으로 일어나는데, 그런 과정들을 건너뛰고 답만 내놓으라는 시도 자체에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주어진 복잡한 상황을 탈출할 문제해결방법 찾기를 바라는 건지, 지식을 상기하여 빠르게 상황을 마무리 짓고 새로운 상황에 도전하는 것을 바라는 건지 분명히 구분할 필요가 있고, 명확한 기준에서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모든 창의적 활동은 ‘충분한 시간’과 ‘명확한 방향’이 필요합니다.

이런 밸런스가 맞지 않게 되면, 너무 충분한 시간과 단답형 방향 설정은 교실 전체의 소란을, 충분한 시간과 복잡한 방향설정은 예상치 못한 엉뚱한 결과물들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결과를 만들어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