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수업과 디지털 과잉…

학교에서 수업을 통해 학생들을 가르치는 과정에 어차피 아날로그 사고가 기반이고 디지털이 보충재라면, 아얘 그냥 디지털을 버리는건 어떨까.

이미 스마트디바이스, 컴퓨터, 인터넷, 가전제품과 같은 디지털 세상은 우리 삶에 있어서 상당히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그 기술 자체의 변화와 발전이 무한하기 때문에 이를 살펴보며 기다리는 것 자체로도 너무나 매력적이다.

디지털 세상 덕분에 우리는  편리한 삶 뿐만아니라 가치 있는 삶까지도 추구할 수 있게 되었고, 간절한 필요에 의해 디지털 세상을 만들어낸 기성세대로부터 지금 태어나는 아이들도 디지털 세상의 혜택을 누리게 되었다.

인류에게 있어서 ‘아날로그’는 지구라는 공간좌표계에 생존하고 같은 좌표계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지능을 가진 고등 생명체가 인지하고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가장 최고의 시스템이다. 반면에 디지털은 그저 ‘존재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사용할 수 있을’ 뿐이지 실체가 없다는 사실.

디지털의 세련됨에 밀려 아날로그는 이제 그저 옛 ‘추억’ 쯤으로 여겨지는 것 같은 분위기다. 하지만, 모두가 아날로그가 ‘추억’이라 여겨도, 교육에 있어서 ‘아날로그’라는 것은 교육의 과거, 현재, 미래를 연결하는, 끊을 수 없고, 대체할 수 없는 중요한 끈이다.

디지털 세상에 태어난 아이들… 스마트폰으로 동요를 듣고, 손가락 하나로 영상을 보고 있다. 지하철에서 만난 두 돌도 안된 아이가 아이패드를 열고, 만화나 노래가 나오는 앱을 실행해 플레이 버튼을 눌러 시청하는 것을 보고 우리가 ‘천재’라며 놀라지 않는다. 디지털 세대들의 시대인 것이다.

학교 수업 시간에도 디지털 디바이스와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쉽고 빠르게 현상을 이해하고 생각을 이끌어내어 학습할 수 있다. 인터넷이라는 환상적인 디지털기술은 교실을 벗어나 확장된 세계를 경험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학교를 벗어나 가정에도 연결되어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마치 공기를 마시듯 사용할 수 있다.

다만, 디지털 세대들이 살아가고있는 세상 그 자체는 결국 ‘아날로그’로 이루어져 있고, 아날로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바람을 느끼고, 새 소리를 듣고, 음식물을 섭취하고, 자연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 삶에 있어서도 물건을 옮기고, 자동차를 운전하고, 과일을 깎고, 벽돌을 나르는 것. 이 모든 것이 디지털로 될 일은 분명 아니다.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가 감기에 걸리자 어린 딸이 하는 말… “엄마, 강아지가 고장났어. 새 거 사와!”
이 일화에서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

디지털과 인터넷이 만나 만들어낸 문제들을 보자. 지금 나와 스마트폰으로 채팅하는 상대는 친구가 아니라 스마트폰 프로그램일 뿐이라는 착각. 온라인 게임 속에서 내가 상대하는 것은 화면에 보이는 모습을 한 괴물일 뿐이지 조금 전까지 나와 공을 차던 친구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심각한 사이버중독…

디지털은 태생부터 ‘참’과 ‘거짓’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런 특성이 과연 우리의 사고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우리(교사)의 예를 들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디지털디바이스를 이용해 수업하고 학생들이 학습하는 활동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성공과 실패를 구분지으며 ‘양분’된 사고를, 디지털로 보여지는 결과는 100% 믿을 수 있다는 위험한 ‘신뢰’를 갖게 된다. (수행평가를 한다. 평가노트에 펜으로 O-+로 점차 향상됨을, X+/로 어려워했으나 해결하여 기뻐함을, A-, AA+로 성취 정도를 세분화하여 표기하는 대신, 태블릿이나 PC의 평가테이블에 OX 값을 선택하고 있지는 않은가?)

과학시간. 우리 마을 뒷산에서 채집한 나뭇잎을 통해 나무의 분포를 알아보는 프로젝트 활동이 시작되었다.

GPS를 통해 지형과 길을 찾고 채집한 자리를 지도에 표시하고, 교실에 돌아오거나 또는 채집한 그 자리에서 스마트디바이스의 ‘앱’을 실행해 ‘oo나무의 잎’이라는 사실을 알아내 기록하며 학습을 진행한다. 교실에 돌아와서는 지형과 나무의 분포와 기후와 같은 확장된 다양한 이야기를 찾아 토의하고 이야기 하기 시작한다. 별 문제 없어보이는 멋진 학습 활동이다.

몇 일에 걸쳐 수 차례 산을 올라 탐구해야 했던 사실을 단 한 번에 알아버린데다가, 기록한 다양한 데이터를 통해 더 많은 것들을 알아냈으니 이보다 완벽한 수업이 있을까? 아이들은 협력과 토의까지 충분한 양의 학습을 했으니 학습이 ‘완성’되었다고 생각하겠고, 교사 또한 수업이 계획대로 ‘끝났다’고 생각할 수 있겠고, 디지털 디바이스에게 물어보고 알게된 내용을 그대로 ‘믿고 ‘ 모든게 마무리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겠지만,  학생들은 이런 것들도 알게 되었을까?

  1. 이런 탐구는 수 일이 걸리는 활동이다.
  2. 한 가지 데이터를 잘못 기록하면 다시 산을 올라야 한다.
  3. 내 친구와 역할을 나누지 않고서는 모두 기록할 수 없다.
  4. 글씨를 바르게 쓰지 않으면 제대로 알아보기 힘들다.
  5. 산에는 나무 이외에도 수 많은 식물이 살고 있다.
  6. 산에 올라 느끼는 바람은 참 시원하다.
  7. 어제의 산과 오늘의 산은 모습이 다르다.
  8. 어제는 힘들었지만, 다시 오르니 힘들지 않다.
  9. 이제 혼자서도 산을 오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10. 혼자보다 친구들과 함께 오랜 시간동안 오르는게 더 재미있다.
  11. 지난 번에 보지 못했던 구멍난 나뭇잎도 있다.
  12. 오, 이런… 나뭇잎 뒷면에 희한한 벌레들이 붙어있다.

1~12번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면, 어린시절 친구들과 놀러, 학교 숙제로 곤충채집 하러, 미술시간에 사용할 나뭇잎 주우러 여러 차례 산에 올라봤던 아날로그 세대들이기에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아날로그를 경험해보지 못한 디지털 아이들에게 위의 내용이 반드시 필요한 것들은 아니었을까?

만약, 그 수업에 디지털디바이스들이 모두 빠지고나면, 책이 필요했을테고, 협동이 필요했을테고, 물론 오랜 시간이 걸렸을테고… 불편한 점과 답답함이 참 많았을 것이다. 모르는 것을 알기위해 할아버지를 찾아갔을테고, 산 주인을 만나 물었을 수도 있다. 예상밖의 것들을 접한 경험이, 성장하여 사회에 나가 원하는 무언가 도전하고자 하는데 위의 경험이 반드시 필요하거나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외국 재난 영화에서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몇 십 년동안 꿀벌을 따라 전 세계를 탐험하는 과학자”

우리 나라에서는 별 것도 아닌 주제로 오랜 시간을 가지고 연구하다가는 굶어죽거나 포기하고 치킨집을 열어야만 한다. 재난 영화의 과학자들은 디지털 장비를 싣고 넘치는 열정과 심해와 같은 안목으로 허름한 몰골로 돌아다닌다. 그들이 발견한 중요하고 심오한 데이터는 디지털 장비를 통해 전세계 연구소로 긴급히 보내지고, 이를 분석한 다른 과학자들은 재난에 대비하자고 소리친다. 물론, 정치인들은 이를 무시하다가 위풍당당하게(?) 재난을 맞이하는게 전통적인 스토리 전개다.

인간 삶의 키워드인 열정과 안목, 종합적 판단은 분명히 아날로그다. 디지털 데이터를 분석하는 것은 아날로그적인 무언가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왼손디지털은 그저 도울 뿐.

모든 수업을 디지털 컨텐츠나 디지털화 된 방식으로 진행하는건 아니다. 또한,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활동에서 디지털은 이를 더 발전시킬 수 있고, 가치화 할 수 있다.

당연하다. 교실 수업과 학습 활동을 통해 생성된 방올방울 맺힌 사고들을 디지털로 더 발전시키고 구체화, 가치화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충분히 중요한 부분이고 그럴 수 있다는데 동의한다.

하지만, 인간은 디지털의 편리함과 효율성을 쉽게 포기할 수 없다. 특히, 태어나자마자 디지털이라는 모포에 둘러싸인 아이들에게는 더더욱 포기할 수 없을 것이다. 교사가 빨리 답을 찾아내고자 하는 학생의 생각을 제어하며 스탭에 맞추어 완급을 조절할 수도 없는 일이고, 그렇다고 학생들이 답을 얻은 뒤에는 (디지털 방식으로) 스위치를 꺼버리려는 성향이 강해 더 나은 생각을 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아니다.

아날로그의 핵심은 기다림이다. 빵을 굽기 위해서는 빨리감기 버튼이 아니라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고, 모닥불을 피우기 위해서는 아이콘 클릭이 아니라 불씨가 필요하다. 학습활동에서도 문제를 인식하면 이런 저런 궁리하며 기다리다가 적극적으로 방법을 찾다가 막히고 기다리고 답을 찾아가는 것이다. 디지털 디바이스로 쉽고 빠르게 답을 찾아 다음 단계로 진입하는 과정이 필요한 시기는 어른이 되어서지, 어린시절은 아닐 듯 싶다.

학교에서 수업을 통해 학생들을 가르치는 과정에 어차피 아날로그 사고가 기반이고 디지털이 보충재라면, 아얘 그냥 디지털을 버리는건 어떨까. 아니면, 디지털 세대로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소양으로서의 디지털 교육이 필요하다면,  기록, 보관, 전달의 역할정도로만 활용하는 정도만 두고. (디지털디바이스로 학습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누적시키고, 공유하는 용도)

 

비록, 미려하지 못하고, 느리고, 완성하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아날로그니까.

 

:맥노턴.

글쓴이: 맥노턴

초등교사커뮤니티 '인디스쿨' 대표